윤승용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

“결국 터질 것이 터졌구만.”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1학년 강경대 씨가 학교주변에서 시위도중 백골단이라 불리던 사복경찰의 쇠파이프에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 1991년 4월 26일 오후. 당시 한국일보 기자로서 치안본부(현재의 경찰청의 전신)를 출입하던 나는 학생이 시위하다 최루탄이 아닌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초유의 사태를 접하고 경찰수뇌부의 움직임을 취재하기 위해 간부들 방을 기웃거리던 중이었다. 평소부터 친분이 있던 한 간부가 내게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했다.

 “제5기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 조직정비를 완비하기 전에 신학기 초부터 가능한 한 시위를 조기 진압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시위 학생들이 학교밖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지 못한 경찰서장들은 문책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경찰 수뇌부가 이토록 강경진압을 독려하면 일선에서 반드시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1987년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발생한 서울대생 김종철 고문치사사건도 역시 학생운동 조직원에 대한 검거실적을 과잉 독려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었다.”

내가 갑자기 거의 20년 전의 일을 떠올린 것은 최근 빚어진 채수창 서울 강북경찰서장의 항명사건이 묘하게도 당시의 상황과 매우 빼 닮았은 것 같기 때문이다.

채 총경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경찰수뇌부, 특히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했다. 채 총경은 “경찰서장의 한 사람으로서 서울경찰의 가혹 행위에 대해 사죄를 드립니다. 이번 양천서 사건은 우선 가혹 행위를 한 담당 경찰관의 잘못이 크겠지만, 이것 못지 않게 가혹 행위를 하면서까지 실적 경쟁에 매달리도록 분위기를 조장한 서울경찰청 지휘부의 책임 또한 크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일선 현장 경찰관에게 미루면서 조직원 잘못에 절대 관대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지휘부의 무책임하고 얼굴 두꺼운 행태에 분개합니다”라고 지적했다.

채 총경은 이어 실적평가의 문제점을 일일이 적시하고 “경찰관이 법을 집행함에 있어 얼마나 절차를 잘 준수하고 얼마나 인권을 우선시했는가를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해야 하는데도, 검거점수 실적으로 보직인사를 하고 승진을 시키겠다고 기준을 제시하며 오로지 검거에만 치중하도록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에 대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상명하복이 관행화한 경찰조직에서 공개적으로 수뇌부의 퇴진을 요구한 채 총경의 행위를 굳이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가 제기한 문제점은 낱낱이 따져 볼 가치가 충분한 사안임이 분명하다.

이번 양천서 고문사건 등의 근인(根因)으로 그가 지적한 ‘성과주의’의 핵심은 점수로 경찰관의 업무평가를 하는 것이다. 서울경찰청의 ‘2010년 수사·형사 업무성과 평가계획’에 따르면 ▲강도살인 70점 ▲살인 50점 ▲방화·강간 20점 ▲13세 미만 강제추행 20점 등의 점수가 책정돼 있다. 경찰관들은 경찰서별로 정해진 점수를 채워야 좋은 평가를 받아 승진 후보군에 들 수 있다.

경찰 수뇌부가 민생치안 강화를 위해 실적경쟁을 시키고 이를 계량화하는 것은 시대흐름에 맞는 시책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행과정에서 시대적 상황과 조직 내외의 조건을 보아가며 조화를 이뤄야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현재처럼 막무가내로 실적경쟁을 추진하다보니 인권을 경시하거나 점수가 높은 사건에만 매달리는 부작용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일선 경찰들도 “점수가 높은 범죄에 치중하다 보니 청소년 대상 성범죄처럼 중대 범죄이지만 상대적으로 평가 점수가 낮은 범죄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게 된다”고 토로한다고 한다. 또한 범인 검거 못지 않게 중요한 게 범죄 예방인데 경찰력이 검거에만 집중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예방활동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 채 총경의 문제제기에 대해 경찰청 등도 검거실적 일변도의 현 업무평가 방법을 개선하고 시민들의 인권에도 귀를 기울이도록 교육하겠다는 등의 처방전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처방전이 말단에까지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번 과정에서 불거진 경찰 조직내부에 만연한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문제도 병행해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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