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익숙한 전개와 과하지 않은 전개

음악, 적재적소에 쓰여 빈틈 메워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처음 시사회로 스크린의 막을 올린 영화는 자타공인 연기파 배우 이병헌과 박정민, 윤여정 주연의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주먹만 믿고 살아온 한물간 전직 복서 ‘조하(이병헌 분)’와 엄마만 믿고 살아온 서번트 증후군 동생 ‘진태(박정민 분)’ 두 형제가 난생처음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오갈 데 없는 조하는 한때 WBC 웰터급 동양 챔피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간 친구의 단골 식당에서 헤어진 엄마 ‘인숙(윤여정 분)’과 재회한다. 인숙이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난 지 17년 만이다. 인숙은 조하에게 “집에 같이 가서 살자”고 하지만 조하는 인숙에 대한 앙금이 계속 남아 있어 선뜻 나서지 못한다. 캐나다를 가기 위한 경비를 모으던 조하는 숙식 해결을 위해 인숙의 집에 따라간다. 그곳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이부동생 진태를 만난다.

서번트 증후군인 진태는 라면 끓이기, 게임 등을 잘하지만 무엇보다도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 입만 열면 “네” 타령인 동생을 보며 한숨부터 내쉬는 조하는 캐나다 이민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억지로 형 노릇을 하며 진태와의 불편한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이 영화가 일찍부터 화제가 된 이유는 배우 이병헌의 코미디 복귀작이기 때문이다. 그간 이병헌은 ‘매그니피센트 7’ ‘내부자들’ ‘마스터’ ‘남한산성’ 등 스크린을 압도하는 강렬하고 묵직한 연기로 선보였다. 이번 영화에서 ‘김조하’로 분한 이병헌은 되는 대로 자른 머리 스타일, 동네 백수 형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거칠고 투박하지만 은근히 속 깊은 반전 매력을 뽐낸다. 코미디 연기를 위해 칼을 간 듯한 이병헌의 열연에 관객은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짓는다. 특히 이종격투기 선수 스파링 상대로 나서 발차기 한방에 기절하고, 전문가처럼 전단을 배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충무로에서 주목받는 연기파 배우 박정민이 가세한다. 이번 작품은 배우 박정민의 ‘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태 역을 맡은 그는 어눌한 말투와 표정, 손동작 하나하나에 서번트 증후군의 특징을 담아 연기했다. 또 도래미도 치지 못하던 박정민은 피아노에 특별한 소질이 있는 진태를 연기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을 거쳐 고난도의 연주를 소화해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장애를 가진 아들과 그를 보살피는 엄마,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 자존심마저 잃은 복서 등의 설정은 굉장히 낯익다. 처음 영화를 접하면 ‘굿 윌 헌팅(1997)’ ‘말아톤(2005)’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 ‘채비(2017)’ 등을 떠올리기 쉽다.

이 같은 선입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는 색다른 전개로 관객을 인도한다. 각자의 사연은 다루되 과하진 않다. 눈물 지정 장면인 모자 상봉 신은 애써 억누르려는 조하의 감정에 동요돼 재빠르게 넘어간다.

그러나 익숙한 설정과 시원한 전개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어떤 감정에 몰입해야 할지 판단되지 않는다. 조하와 진태의 이야기를 공평하게 다루려다 보니 클라이맥스에 다다랐을 때 감정이 동요되지 않는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이 같은 구성의 부실함을 메운 것은 배우들의 열연과 음악이다. 이병헌과 박정민을 이끄는 건 두형제의 엄마로 열연한 윤여정이다. 언론시사회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제 욕심에 사투리를 쓰겠다고 나섰는데 촬영 중간쯤 사투리가 너무 힘들더라. 열심히 했는데 그것밖에 못 했다”고 고백했지만, 그의 내공 깊은 연기력으로 표현한 인숙의 모성애는 관객의 가슴을 울리기 충분했다. 주인집 주인과 딸인 김성령과 최리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며, 특별출연한 한지민은 묵직한 등장으로 이야기를 뒷받침해준다.

아울러 영화의 톤과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음악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 제 역할을 해낸다. 진태가 연주하는 쇼팽과 차이코프스키 등의 클래식부터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까지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은 적재적소에 사용돼 극을 풍성하게 채운다.

훈훈한 가족애와 유쾌한 코미디로 웃음을 선사하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오는 1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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