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한창인 남아공에선 지난 21일 밤(한국시간) 골 세례가 마치 폭격이라도 하듯 골 망을 쉴 새 없이 흔드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남아공월드컵 G조 북한과 포르투갈의 경기에서였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포르투갈에 패한 북한은 44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복수의 기회로 삼으며 전열을 정비하고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세계정상의 벽은 높기만 했다.

케이프타운 그린 포인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한과 포르투갈의 경기는 전반 초반엔 수비와 공격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후반에 들어서며 10분 만에 3골의 연속골을 허용하면서 조직력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왜 그리 가슴이 아파왔을까. 남의 일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국제무대에 경험이 없는 북한선수들로선 의욕과 열정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유연함이 없는 사고 속에서 벌어진 유연함이 없는 축구는 변화와 충격에 속절없이 무너졌던 것이다.

강한 정신력과 체력과 실력을 겸비한 북한 선수들, 그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길들여진 의식과 사상으로 인해, 가진 장점들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다. 실력의 문제로 단순 치부해 버리기엔 많은 의문과 생각을 하게 하는 경기였다. 누가 그들만의 얘기고 그들만의 아픔이라고 하겠는가. 그렇다. 남북한 우리 모두의 아픔이요 우리 모두의 책임이요 패배요 치욕의 순간이었다.

우리가 북한의 승리를 기원하며 애타는 심정으로 응원했듯이,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피는 못 속이는 것인가. 북측도 북한조선중앙TV를 통해 지난 14일 한국과 그리스전을 녹화 방영했다. 방영 후 ‘평양시민들은 한국선수들에게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보도시간 또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인 밤 9시부터였다. 반면 지난 17일 아르헨티나전의 1대 4의 패전 소식은 방영도 관련보도도 일축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경기는 침묵으로 일관했음도 알 수 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한 남과 북의 분위기는 정치적 군사적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나 남과 북은 하나임을 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며, 결국은 하나가 돼야 한다는 밑으로부터의 강한 주문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세계 각국은 제 나라를 알리며 하나 되는 축제의 장으로 저마다 만끽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왠지 마음 한구석 남아 있는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아픔의 장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한 피, 한 얼굴, 한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국가를 부르며 인류 앞에 서야 하며, 수치를 드러내야 하는가. 새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축제의 장이기에 앞서 우리에게는 회개의 장이 되어야 함도 무리한 요구일까.

당연히 가슴 아픈 바람이요 주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선택이 아니라 필히 그렇게 돼야 한다. 무엇을 말인가. 강한 실력과 조직력도 한 순간에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짓밟힐 수 있다는 교훈이 금번 축구가 일깨우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마치 철옹성(鐵甕城)과 같은 동토(凍土)의 왕국 북의 조직 또한 언젠간 일시에 와해될 수 있음을 제발 깨닫고, 통치자 개인과 권력을 위해서는 그만하고, 자신들의 표현대로 인민을 위하고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통일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 것은 어떨런지 호소하고 싶다. 또 그 길만이 자신이 살 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이젠 변하고 있다. 이 변화의 물결을 타지 못한다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음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아시아 즉, 다소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본도 중국도 아시아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주길 아시아 각국의 경기마다 마음속으로 출전국을 향해 빌어주는 하나 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아시아는 유례없이 축구의 변방만은 아니라는 희망을 갖게 됐고, 세계와 함께하고 또 제패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두 개의 국가가 울리지 않는 하나의 국기가 올라가고 하나의 국가가 울려 퍼지는 그 날을 만들어가는 시금석이 되자. 하나의 아시아를 향해 상호 양보하고 협력하는 계기가 되자. 그리고 세계를 리드하는 아시아의 강한 정신문화를 일궈가자.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소명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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