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지 못한 채 무심코 지나쳐 왔으나 거기엔 역사가 있고 밝혀져야 할 진실이 있었다. 유불선은 물론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경서의 뜻이 작정한 때가 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이제 바로 그 알 수 있는 때가 되었는지 하나씩 하나씩 그 진실과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밝혀지고 깨달아진 것을 말하니, 그 이전의 말과 다르므로 거짓말하는 자가 되고 미혹하는 자가 되고 이단이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종교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 또한 어느 때가 오지 않고는 도무지 알려고도 안 했고, 알 길이 없었다.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종교의 의미와 뜻이 하나씩 깨달아지면서 세상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새롭게 알려지고 발견되는 역사와 진실은 위서(僞書)요 위증이 되고, 기존의 사대적 사상이 깃들어 있는 왜곡된 역사와 문화는 진서(眞書)로 취급되고 있는 게 아직까지의 현실이다. 이로 보아 경서나 세상적 학문이나 어쩌면 그 걸어온 노정은 같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근래에 들어 온 국민이 그렇게 열광하고 좋아하는 문자가 있고 색깔이 있고 형상이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기독교만이 마귀의 모양이며 단어(붉은악마)라고 배척하고 있다. 그 배척의 중심에 바로 ‘치우(蚩尤)’가 있다.

그리고 그 치우는 우리와 함께 면면이 이어온 우리의 살아 있는 역사요 문화요 진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왠지 그 형상이 좋고, 그 색이 친근감이 간다. 그래서 너도나도 그 색깔의 옷과 그 도깨비의 형상을 쓰고 붙이고 거리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자체로 우리는 하나요 미래요 주인임을 느끼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나아가 세계인에게 알리고 있다. 바로 그 치우가 우리의 조상이요 하늘의 아들(天子)이었다고…. 그 이면엔 이제 다시 그날의 영광을 회복하겠노라고 외치고 다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귀면와(鬼面瓦: 나쁜 귀신을 쫓기 위해 치우천황의 얼굴을 새겨 장식한 기와)뿐만 아니라 예부터 온갖 무기에 새겨진 무서운 형상은 다름 아닌 ‘치우’였다.

절에 가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얼굴이 사천왕상(四天王像)인데, 이 사천왕상도 자세히 보면 그 허리엔 어김없이 치우의 형상이 새겨 둘러져 있다. 그렇다! 이 민족에겐 치우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해 온 바로 우리의 미소다.

이 치우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다시 새겨지기 시작한 것은 스포츠를 통해서다. 그것도 축구다. 1999년 잠실벌에서 열렸던 브라질전의 공식 캐릭터로 ‘붉은악마 치우’가 육천년만에 첫 선을 보인 것이다. 그 후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온통 거리를 붉게 물들였다.

그때부터 비로소 세간에는 이 치우천황의 존재에 의문과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치우천황은 황당한 얘기도 설화도 신화도 도깨비도 아닌 우리의 살아있는 역사 즉, 한민족 고대사에 당당히 등장하는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한민족 고대사 중, 환웅 고대사의 14대 천자(天子) 치우천황이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세계를 지배했던 치우천황의 용맹스런 역사는 이후, 고조선시대에 고조선과 중국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한무제의 사관(史官)이던 사마천에 의해 기술된 ‘사기(史記)’에 중국 신농씨 나라와의 왜곡된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이 왜서로 인해 치우는 오늘날까지 요술이나 부리는 도깨비로 전락했고, 천자가 되고자 천자 치우에게 도전장을 던졌다가 전쟁의 역사상 가장 참혹한 패배를 맞게 된 신농씨 나라의 임금 유망의 제후에 불과했던 ‘헌원’은 영웅으로 오늘날까지 묘사되어 온 것이다.
바로 이 사마천의 ‘사기’가 사기성 높은 최초의 역사왜곡서가 된다. 그리고 그 거짓의 역사는 오늘날 ‘동북공정’이란 역사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붉은악마’라고 했을까. 상대의 입장에선 그만큼 두려운 존재였다는 의미다. 과거 중국의 입장으로 볼 때 우리 한민족을 오랑캐라고도 불렀다. 이 또한 같은 맥락에서다.

또 치우천황의 용맹스런 정복이 한창일 때, 중국은 우리를 동이족(東夷族)이라고도 불렀다. 이는 동쪽에 큰 활을 잘 다루는 민족이란 의미며, 거기엔 우리 민족이 그만큼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음을 역력히 읽어낼 수 있는 표현들이다.

육천년 전 붉은악마의 공포가 이제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다. 그래서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으며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기상과 기운을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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