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원장(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월드컵 열풍이 거세다. 지구 반대편 저 끝자락 멀리 남아공에서의 승전보가 우리를 들뜨게 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태극전사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축구가 온 국민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고,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며, 삶의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 전에도 올림픽이나 여러 운동 경기가 있을 때마다 대한민국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마치 내 일처럼 기뻐했던 우리 국민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한 곳에 끌어 모으는 결집력을 가장 강하게 보이는 스포츠는 바로 축구다. 왜 ‘축구’일까? 필자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이에 대한 몇 가지 정신분석적 설명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축구는 열 한 명이 하는 팀 스포츠다. 우리는 대한민국 축구팀을 응원한다. 김연아 선수나 최경주 선수를 응원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물론 축구팀에도 스타플레이어가 있다.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서 박지성이나 이청용 선수를 열심히 응원하기는 하지만, 그들도 큰 틀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의 일원들이다. 개인이 아닌 집단을 응원하는 것은 개인적 차원이 아닌 집단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때 빛을 발한다.

집에서 개인적으로 TV를 보면서 응원하는 것보다 여러 명이 함께 모여 서로 어깨를 감싸고 함성을 지르면서 응원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단일민족 사상과 오랜 기간 이어져왔던 집단 농경 사회의 영향이 크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축구다. 집단에 속해 있을 때 개인은 자신의 나약함과 불안을 잊어버리게 된다.

둘째, 축구는 대중적인 운동이다. 축구는 공만 있으면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다. 다른 일체의 장비 없이도 플레이가 가능하다.

따라서 축구는 대부분의 나라가 참여하고, 또 잘 할 수 있다. 다른 스포츠 종목의 강국은 대부분 잘 사는 선진국이지만, 축구만은 비교적 경제적 순위와 상관없다. 심지어 북한마저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않는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축구는 어느 정도 해소시킨다.

셋째, 축구는 쉬운 경기다. 축구 규칙은 매우 간단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규칙이 오프사이드인 경기가 축구다.

많은 공부와 사전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축구 경기는 여러 계층을 아우르는 종목이요, 학력 간 격차를 허무는 종목이다. 쉽다는 것은 친근함을 의미하고, 친근함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넷째, 축구는 인간의 본성인 공격성을 자극시킨다. 모든 운동이 어느 정도는 인간의 공격성을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축구는 공격성을 상당히 체계적으로 승화시킨 운동이다.

발로 공을 차는 직접적인 공격 외에 상대방과 어깨를 부딪치며 공을 다투는 경쟁적 요인을 갖고 있다. 공 하나를 두고서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은 마치 먹이를 한 가운데 두고서 두 마리 야수가 다투는 광경을 무의식적으로 연상시킨다.

상대방의 진영을 파고들거나 우리 진영을 지키는 것은 고대 국가 간의 땅 따먹기 전쟁을 암시한다. 우리 진영에 들어와 있는 공을 멀리 차 보낸 다음에 우리 선수가 상대방의 골문에 공을 집어넣는 것을 보라.

마치 우리나라를 침략한 병사들을 물리친 다음에 곧바로 역습하여 상대 국가의 수도를 함락시키는 것과도 같다. 전쟁을 하면 무조건 이겨야 하다는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것이 축구다. 축구는 지휘관(감독)의 전략에 의해서 영웅(스트라이커)의 멋진 무공으로 적을 무너뜨리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설사 이번 전쟁에 진다고 해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다음 기회를 잡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전쟁 준비를 하는 것도 축구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라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영원히 축구를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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