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김덕환 전수자 금박작품 (사진제공: 금박장 김기호 이수자)

[천지일보=박선혜 수습기자] 우리나라 금박은 통치자의 권위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견고한 종교적 믿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특히 종교와 관련해서는 불교의 수많은 불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통 금박은 주로 의복에 문양을 넣을 때 사용됐다.

전 세계적으로 금박의 역사는 깊다. 중요무형문화재 119호 금박장 김덕환 옹에 따르면 금박이 최초로 사용된 시기는 서기 2690년경 이집트 제4왕조 때다. 중국 은허출토 칠기에는 10마이크로미터(㎛) 두께의 금편이 둘러졌다.

우리나라 역시 고대부터 금을 의복에 많이 이용했다. <삼국사기>에는 금과 은의 사용을 규제한다는 ‘금은니(金銀泥) 사용 제한’을 찾아볼 수 있으며, 고구려 벽화에도 금박댕기의 그림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의 꽃이 활짝 폈던 고려시대에는 불화(佛畵)나 사경 등에 금은니를 입혔으며, 승려들이 직접 금박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금박은 종교적 의미에서 많이 벗어났다.

조선시대에는 왕실 경공장(京工匠)에 금박장을 뒀다. 금박장은 국가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왕과 일가친척의 예복에 금박으로 장식했다. 이때 금박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해졌다. 이는 의복의 색과 금박문양이 옷을 입는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김덕환 전수자 금박작품(왼쪽)과 배나무로 조각한 용문양 금박판, 새긴 용 문양 (사진제공: 금박장 김기호 이수자)

고귀한 것에 쓰인 금박은 무늬를 도안, 금판을 조각해 금박지를 만든다. 이 금박판 위에 민어부레풀이나 아교 등을 혼합해 만든 접착풀을 바른다. 접착풀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판을 뒤집어 무늬를 찍고 두드려 건조 후 손질한다.

금박옷은 금박제작을 옷에 입히는 것으로 금박장은 옷의 구성에 어울리는 문양을 선별·배치하는 안목과 문양판 조각 기술, 오랜 제작 경험이 필요하다.

현재 금박 공예가들은 “금값이 올라 가금박지를 주로 사용하며 순금박지는 필요할 때만 소량 구매한다”고 말했다.

5대째 금박 공예를 이어온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김기호 금박장 이수자는 “예부터 내려온 금박의 멋을 사라져가는 한복문화에 담을 것”이라며 “전통문화에 대한 적극적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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