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영하 전 레바논 대사 “젊은이여, 인생의 성공방정식을 풀어라”
[인터뷰] 이영하 전 레바논 대사 “젊은이여, 인생의 성공방정식을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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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예비역 중장
자랑스런 예비역상 1호 수상
조종사로 임관 뒤 영공 수호
참모차장까지 요직 두루 거쳐
뛰어난 지휘 능력 인정 받아
“조직관리 완벽 수행 자긍심”
주 레바논 대사로 국위선양

이영하 전 레바논 대사(공군 예비역 중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영하 전 레바논 대사(공군 예비역 중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자랑스런 예비역상 수상은 영광스럽지만,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자랑스런 예비역상 1호의 주인공인 이영하 공군 예비역 중장은 공군참모차장, 주 레바논 대사 등을 역임한 국방·안보·외교 분야의 전문가다. 1974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전투기 조종사로 임관한 뒤 영공방위 임무에 열정을 쏟아온 하늘의 수호자다. 작전사령부 작전처 근무 때인 1988년엔 ‘88서울 올림픽’의 축하비행과 오륜기 비행을 위한 계획통제장교에 임명됐다. 개막식에서 정교하고 정확한 축하비행을 전 세계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올림픽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이 같은 공로로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투기 조종사로서 명예로운 길을 걸어왔으며, 2007년 8월, 38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할 때까지 오직 국가 방위와 공군 발전을 위해 헌신 진력해 왔습니다.”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창공의 전투기가 수놓는 비행운만큼이나 곧고 굵직했다. 공군에서 ‘쓰리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동안 계급별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제15혼성비행단 단장, 공군 남부전투사령부 사령관, 공군교육사령관, 공군참모차장 등을 맡으며 뛰어난 지휘력을 인정받았다. 사실상 우리나라 공군의 역사와 함께하며 공군 발전을 이끈 주역인 셈이다.

지난 2007년 공군참모차장을 끝으로 전역한 뒤 주레바논 특명전권대사(2009~2011)로 활동했고, 현재는 한국군사학회 공군부회장(2013~현재)을 맡고 있다. 사회공헌 다사랑 월드 이사장(2013~현재)으로 활동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매진하고 있다. 지난 11월 1일엔 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 시상하는 ‘제1회 자랑스러운 예비역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청사 부근 카페에서 만난 이 전 대사는 비록 예비역이었지만, 군인의 기풍이 물씬 풍겼다.

 

이영하 전 레바논 대사(공군 예비역 중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영하 전 레바논 대사(공군 예비역 중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비행기 보며 자란 꿈

이 전 대사는 1951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조종사와의 인연은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살던 마을은 광주 제1전투비행단의 비행기 상승 경로 아래 있었다. 전투기가 뜨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는 “비행기가 지나갈 때면 조종사가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조종사의 꿈은 이렇게 그의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꿈을 펼쳐보려는 생각도 하기 전에 시련이 닥쳐왔다. 아버지가 토지 관련 민사 소송에 휘말려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가산이 거덜 났다. 당장 고등학교 입학 등록금도 없었다. 이 전 대사는 “무안 몽탄역에서 철도공무원을 하는 이모부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 역시 박봉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희망이 없었다. 크게 낙담해 철길을 따라 방황하다가 한 노인의 훈계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몇몇 독지가의 도움으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조종사의 길에 들어서다

아버지는 그에게 서울대학교 법대 입학을 원했다. 결과는 탈락. 크게 실망해 잠시 방탕한 생활에 빠지기도 했던 그는 어릴 적 꿈을 기억해냈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 그는 공군사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 두 곳의 시험을 쳤다. 1차 시험에서 둘 다 합격했다. 공군사관학교 면접 일정이 먼저 진행됐다. “자네는 과학 공부를 하고 있어야 겠어”라는 면접관의 이야기에 그는 합격을 직감했다. 그대로 육사 면접을 포기하고 공사 입학으로 마음을 굳혔다.

공사 22기로 입학한 그는 생도 교육 과정에서 두각을 보이자 교수요원을 제안받기도 했다. 교수요원을 하면 전투기 조종사의 꿈은 접어야 했다. 이 전 대사는 “제가 고민을 많이 한 결과, 조종사의 길을 택했다. 교수요원 스카웃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꿈은 이뤄졌다. 그는 F5 제공호를 타고 창공을 누비는 어엿한 조종사가 됐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했다. 1999년 준장으로 진급해 합참의장 비서실장을 역임한 뒤 제15혼성비행단장으로 부임했다. 대통령 전용기 운용과 2000년 ASEM 등 국가급 행사지원을 완벽히 수행했다. 2001년엔 서울공항에서 개최된 ‘서울 에어쇼’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가 비행단장으로 부임하면서 2년간 20여개의 부대표창을 받았다. 2002년 소장으로 진급해서는 초대 남부전투사령관으로 부임, F-15K 전투기와 T-50 국산훈련기 전력화에 힘을 쏟았다. 2005년 중장으로서 공군교육사령관을 맡아 전군 최초로 6시그마 경영기법을 도입해 33개 프로젝트를 선정, 개선을 추진함으로써 고객 만족도 관점의 교육 훈련체계를 정착시키는 성과를 달성했다.

“지휘관 보임시절 창의적인 인간관리 기법을 도입해 부대원 각자가 최선을 다하는 조직문화를 구축해 단 한 건의 비행기 중사고 없이 조직 관리를 완벽하게 수행한 것을 늘 긍지와 자부심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생 2막, 주 레바논 대사

군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온 그에게 인생 2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주 레바논 전권특임대사로 발탁된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 전 대사는 “당시 레바논에 동명부대가 파병돼 있어서 대사가 군을 잘 알아야 했고, 이 때문에 군인 출신 대사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사 생활이 순탄치는 않았다. 현지인으로부터 “북한에서 왔느냐”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것. 레바논이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를 맺고 있던 탓에 남한과 북한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았다. 그는 이 같은 인식을 바꿔주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선 발로 뛰어야 했다. 크고 작은 행사에 부지런히 나가 우리나라를 알렸다. 노력은 통했다. 대사 임기 종료를 앞두고 진행하는 ‘이임 리셉션’에 500여명의 현지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것. 행사가 진행된 호텔 측은 유럽인 대사도 아닌 동양인 대사 이임 리셉션에 이 같은 규모의 인파가 몰린 것에 놀랐다고 했다.

◆공직 끝내고 사회공헌 활동 투신하다

주 레바논 대사를 마친 그에겐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퇴임 후에 무슨 일을 할지였다. 이임 리셉션에 참석했던 인사 중 50여명이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똑같이 했다. 이런 고민을 안고 한국에 돌아온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신이 총재로 있는 ‘사회공헌공동체협의회’의 부총재직을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사회공헌 활동에 뛰어들었다. 머지않아 총재직을 맡게 된 그는 명칭을 바꿨다. ‘사회공헌 다사랑월드’다.

이 전 대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회공헌 다사랑 월드는 소년소녀 학생가장 등을 돕는 사회복지단체다. 사실 이 전 대사는 공군에서 비행대대장을 맡을 때부터 부대 주변 조손가정 학생이나 장애우를 돕는 활동을 해왔다. “사회 기부 문화를 확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전 대사 자신도 어려웠던 시절 사회로부터 도움을 얻었기에 어떤 모양으로든 사회에 공헌해야겠다는 생각이 늘 따라다녔다.

◆“이 세상에 절대 공짜는 없다”

이 전 대사의 좌우명은 한마디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절대 공짜는 없다”는 말은 그가 늘 강조하는 생활신조다. 그는 “백조가 헤엄칠 때 물밑에선 발놀림을 부지런히 한다. 성공하는 사람은 운이 좋다는 소리를 듣지만, 우리가 전혀 모르는 엄청난 노력을 한다”며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젊은이들에게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전 대사가 강연의 한 주제로 삼는 ‘인생의 성공방정식’에 따르면 생산성, 즉 성공은 동기와 능력의 곱에 습관의 제곱을 곱한 값과 같다. 다시 말해 성공은 동기와 능력에 비례하고, 습관에는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이 전 대사는 “수면은 6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루에 30분씩 먼저 일어나라. 1년에 160시간이면 한 달을 더 사는 것과 같다”고 귀띔했다.

세계관을 넓히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헬조선이란 자괴감에 빠지지 말고 세계로 눈을 돌려라. 자기 역량을 키워서 세계에서 뛰는 젊은이가 돼라.”

마지막으로 그는 “시정이 좋은 날 고고도 비행을 하다보면 동해와 서해가 한 눈에 보일 정도로 한반도가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하늘이 아닌 땅 위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넓은 품으로 안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주요 이력

◆현 직
  사회공헌 다사랑 월드 이사장
  호남대학교 초빙교수
  공군역사재단 부이사장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군사학회 부회장

◆주요 학력
  공군사관학교 22기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취득
  경기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서울과학 종합대학원 대학교 CEO 과정 수료
  영남대학교 법률아카데미 최고과정 수료

◆주요 경력
  공군 교육 사령관 (중장)
  공군 참모차장 (중장)
  주 레바논 특명전권대사
  대한민국 성우회 정책자문위원
  충남대학교 부설 미래군사학회 고문
  공군발전협회 연구위원
  사색의 향기 문화원 고문
  중앙공무원 교육원 객원교수
  계간 문예춘추 문인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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