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만일 큐피트의 화살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바이러스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면?

연봉 삼백만 원을 받는 시나리오 작가 옥택선은 지지리 연애운이 없는 데다 아줌마 소리를 듣긴 해도 피부는 아직 괜찮다고 자신하는 삼십대 노처녀다.

삼년 만에 택선이 과학자라는 조건 때문에 소개팅을 한 상대 남수필은 죽은 실험용 쥐를 애도하기 위해 미키마우스를 수집하는 별종이다. 이 사차원 괴짜와 철없는 백조의 뻔한 연애이야기가 수다스럽게 펼쳐지리라 생각할 때쯤 돌연 남수필이 죽음을 맞이한다. 사인은 그가 연구하던 바이러스 감염.

이때부터 영화 <모던보이> 시나리오를 썼던 이지민 작가의 숨 가쁜 전개와 배꼽을 잡게 하는 능청스러운 유머가 빛을 발한다.

“아이고, 염병할, 사랑한다고요. 앗, 죄송해라. 욕을 했네.”

수필 때문에 바이러스에 걸린 택선은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큐피트의 마법’에 빠진다. 이후 택선은 자신을 이용해 한몫 벌어보려던 남수필의 동료 과학자인 이균의 속셈을 알아차리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그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만다. 그것도 욕설과 함께. 그 고백에는 자신이 정말 사랑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어 욕을 뱉을 수밖에 없는 묘한 아이러니가 겹쳐있다.

작가는 바이러스의 이차 증세를 경험하는 옥택선과 감염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법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환영에 빠지는 ‘마법의 시간’을 통해 슬프거나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간다. 감염자들은 그 시간의 틈새 속에서 20년 전 헤어진 아빠를, 사랑하는 손자가 태어나고 며느리와 아들이 함께 살았던 짧고 행복한 봄날을 만난다.

작가는 아픔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고 전한다. ‘청춘’이라는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은 아픔이 다가올 때마다 소중히 간직했던 행복과 슬픔을 꺼내보며 뒤숭숭한 세상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 그렇게 감염자들은 과거를 거름 삼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기적을 맛본다. 설령 그 과정이 죽을 만큼 아프다고 해도.

이지민 지음 / 자음과모음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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