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종교계의 거목이었던 고 강원용 목사·김수환 추기경·법정스님이 이웃종교 간 대화와 소통을 위해 걸어온 길을 조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강원용 목사ㆍ김수환 추기경ㆍ법정스님이 바라보던 종교세계

종교 간 화합과 상생이 종교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이미 수십 년 전 이웃종교 간 대화의 장을 만들고 소통과 이해의 물꼬를 튼 세 명의 거인들에 대한 회고의 장이 펼쳐졌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회장 이정배 교수)는 3일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관 강당에서 ‘세 명의 거인들이 바라본 이웃종교의 같음과 다름’을 주제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여기서 말하는 세 명의 거인은 강원용 목사, 김수환 추기경, 법정스님으로 한국 종교계가 서로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었던 주인공들이다.

컨퍼런스는 이들 세 명이 생전 이웃 종교와 관련해 펼친 행적들을 돌아보고 그 안에 나타난 종교적 의미를 되새겼다.

▲ 박종화(경동교회) 목사는 “여해 강원용 목사는 한국 땅에서 시작된 ‘종교 간의 대화’를 출범시킨 선두주자”라고 설명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강원용 목사가 바라본 이웃종교의 같음과 다름’에 대해 발제한 박종화(경동교회) 목사는 “여해 강원용 목사는 한국 땅에서 시작된 ‘종교 간의 대화’를 출범시킨 선두주자”라며 “1965년 10월 18~19일 용당산호텔에서 모인 6대 종단 지도자들의 ‘창립을 위한 대화’가 그 효시”라고 입을 열었다.

박 목사는 “강원용 목사는 종교 간의 ‘다름’을 분명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종교들과 대화하고 협력하기 위해서는 ‘같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이는 대화의 주체인 각 종교가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지녀야만 대화가 생산적으로 가능해지고 대화를 통한 협력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 목사는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은 ‘종교혼합주의’도 아니고 ‘배타주의’도 아님을 천명했다”며 “이것은 일종의 ‘포용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정체성’과 ‘사회성’ 사이의 긴장 속 상보관계를 ‘화이부동(和而不同, 같지는 않지만 서로 화합하는 것)’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전했다.

긴장관계 속 ‘화이부동’이 바로 그 유명한 ‘사이·너머’다. 강원용 목사는 이 ‘사이·너머’를 “살아있는 이웃은 항상 자기 나름의 정체성이 있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사회성을 담는다”고 정의했다.

마지막으로 박 목사는 “강원용 목사는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운동을 출범할 때부터 ‘타종교’가 아닌 ‘이웃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주창해온 분으로 ‘정체성’을 고수하면서도 ‘사회성’의 공동과제를 끊임없이 주창하고 특히 한국 사회에서의 종교역할을 크게 봤던 분”이라며 “종교 간 담론이자 사회담론의 틀을 ‘사이·너머’의 긴장 관계 속에서 화합과 협력으로 제안한 분”이라고 설명했다.

▲ 변진흥(가톨릭대 김수환추기경연구소 부소장) 교수는 “김 추기경은 이웃종교인들의 개인적 신앙생활과 그들의 종교가 지니고 있는 긍정적 가치를 인정하고 공동선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종교 간 대화의 의의임을 부각시켰다”고 돌아봤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논(論)한 변진흥(가톨릭대 김수환추기경연구소 부소장) 교수는 “종교대화운동을 중시했던 강원용 목사를 중심으로 김 추기경과 청담스님, 법정스님은 한국 종교계가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셨다”며 “김 추기경은 이웃종교인들의 개인적 신앙생활과 그들의 종교가 지니고 있는 긍정적 가치를 인정하고 사회정의구현, 도덕심함양, 세계평화실현과 같은 공동선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종교 간 대화의 의의임을 부각시켰다”고 돌아봤다.

변 교수는 “김 추기경의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와 접근은 ‘같음’과 ‘다름’을 따로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완성을 위해 상보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통합적 사고에 근거하고 있다”며 “그의 이러한 통합적 사고는 오늘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의 요체가 아닐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죽음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생명의 문화’를 회복하는 것으로 종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유교의 인(仁)사상,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사상. 그리스도교의 사랑 정신이 큰 빛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현장스님(티베트박물관장)은 “법정스님은 상대방 종교의 언어와 정서로 대화하고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법정스님이 바라본 이웃동교의 같음과 다름에 대해 발제한 현장스님(티베트박물관장)은 “먼저 이 자리에 불러주신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이신 이정배 교수님과 이곳까지 인도해주신 주님의 뜻에 감사드리며 인사올립니다”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는 법정스님께서 이런 자리에서 인사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스님은 “법정스님은 ‘천주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나 모두 한 보따리 안에 있는 것이니까 따로 종교를 바꿀 생각은 하지 말라’고 말했었다”며, 법정스님의 이웃종교에 대한 생각을 짧게 요약했다.

이어 “강원용 목사님과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법정스님은 우리 시대 세 종교를 대표하는 큰 어른들이었다”면서 “큰 가마솥을 받쳐주는 세 발처럼, 발이 셋 달린 까마귀가 썩은 고기를 먹어 치우듯 세상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참된 종교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았을까”라고 반문하며 발제를 마쳤다.

각자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지만 공동의 선(善)을 추구하기 위해 ‘타종교’에서 ‘이웃종교’로의 변화를 주도했던 이 시대 세 명의 거인들.

그렇기에 각 종교 간 대화와 소통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지금 이번 학술대회가 향후 종교계를 향해 어떤 방향을 제시할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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