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보성갤러리가 명성황후로 추정한 초상화 ⓒ천지일보(뉴스천지)

‘흰색 두건’은 서민들이 주로 착용하던 전통풍속
‘민씨’를 ‘민비’로 해석하는 것은 큰 오산
존칭의 ‘부인(夫人)’ 한자가 아닌 일반 ‘부인(婦人)’으로 표기돼 있어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지난 8월 중순 다보성갤러리가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초상화라며 공개했던 그림이 범하고 있는 오류를 입증할 사진자료를 본지가 단독 공개한다.

당시 다보성갤러리는 광복 72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에서 하얀 두건을 쓰고 하얀 옷을 입은 평상복 차림의 초상화에 대해 명성황후 추정되는 인물의 초상화라며 처음 공개했다. 갤러리 측은 이 초상화 뒷면에 ‘부인초상’이라는 한자가 선명히 적혀있고, 적외선 촬영 결과 이 글씨 앞에 ‘민씨’라는 한자가 훼손됐다는 점과 족자 뒷면에 ‘민비살해범’이라고 적혀있는 명성황후 살해범 미우라의 글씨 작품과 함께 발견된 점을 이유로 들었다. 또한 그림 속 인물이 착용한 신발과 옷이 고급이라는 점 등을 들어 명성황후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자 학계에서는 옷과 용모가 초라한 이유 등을 들어 명성황후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반론을 제기해 한동안 진위 논란이 있었다.

이에 본지는 이 같은 ‘진위논란’을 잠재울 사진자료 8장을 정성길 명예박물관장으로부터 단독 입수했다.

 
 
▲ 구한말 일반 서민들이 주로 흰색 두건을 착용한 모습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정성길 관장은 ‘명성황후 추정 초상화’에 등장한 하얀 두건에 주목했다. 이유는 8장의 사진을 보면 일반서민들이 하나같이 초상화에 등장하는 하얀 두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초상화에 보이는 두건 뒤쪽 묶은 매듭까지 아주 흡사하다. 곧 전통적으로 서민들이 일반적으로 주로 썼던 것이 하얀 두건이라는 얘기다.

이 초상화가 공개된 후 왕족 후손인 박보림(90, 전 운현궁 관리자)씨는 “모자(흰색 두건)나 의자가 그 당시에 볼 수 없는 것이고, 특히 모자는 일반인이 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혀 명성황후 추정 쪽에 힘이 실리는 발언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본지가 공개한 사진자료는 이를 정확히 반박해 주고 있다. 사진 속 서민층 여인들은 누구나 일상 터전 속에서 흰색 두건을 착용하고 있다. 하얀 두건은 일반인이 쉽게 쓸 수 없는 모자가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풍속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 같은 흰색 두건을 명성황후가 착용한 것으로 주장하는 건 명백한 오류임이 분명해 보인다. 평상복 차림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얀 두건을 왕비가 썼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오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초상화 뒤에 ‘민씨 부인 초상화’라고 적힌 것을 ‘민비’로 해석해 당연히 명성황후일 것으로 해석한 것 역시 모순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성길 관장은 “만약 이 초상화를 일본이 명성황후를 격하시킬 의도였다면 ‘민씨’라고 하지 않고 ‘민비’ 초상화라고 했을 것”이라며 초상화의 오류를 지적했다. 그는 “당시 초상화 뒤에는 성씨를 붙여 ‘박씨부인, 정씨부인’ 등으로 제목을 붙였다”며 “단지 ‘민씨부인 초상화’라고 나온 데다 서민이 주로 쓰고 있는 두건을 착용한 여인을 명성황후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자 모순”이라고 밝혔다.

곧 일본이 의도적으로 왜곡하진 않았을 것이고, 우리 민족이 그린 초상화라면 당연히 ‘명성황후 초상화’라고 정확히 적혀 있어야 진짜 왕비 초상화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즉 ‘민씨’라고 적은 것은 명성황후가 아닌 그저 일반적인 민씨부인을 그린 것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또한 정 관장은 “민씨를 민비로 본다는 것 자체도 큰 오산이지만, 명성황후를 ‘민비’로 격하해 생각한다는 것 역시 아직도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정성길 관장은 2006년에도 모 매체 미국 특파원이 명성황후 사진이라며 제공받은 사진을 보도했다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명성황후 사진이라고 공개되자 이를 대다수 언론들이 전국적으로 보도하며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이에 정 관장은 이미 1989년도에 ‘정경부인’으로 공개한 바 있었던 똑같은 사진을 내보이며 명성황후가 아니라고 밝혔고, 학계에서도 결국 사과발표까지 하며 정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 관장은 당시 사진을 독일에서 구했고, 사진 뒤에는 정확히 ‘정경부인’이라는 메모가 기록됐다고 밝혔다. 정경부인은 관직이 높은 사람의 부인으로, 이같이 정확한 입증자료로 반박했던 것이다.

▲ 2006년 각종 매체에서 명성황후 사진이라고 잘못 보도된 사진. 이는 정경부인 사진으로 정성길 관장이 당시 오류를 바로 잡은 바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번에도 명성황후와 관련해 사건이 터지자 정 관장은 “지성인들이 정확한 근거와 고증도 없이 명성황후 초상화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며,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는 남기지 말아야겠다는 책임감으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초상화에 대해 “만약 초상화 여인이 머리를 정경부인처럼 했다면 명성황후로 추정해도 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흰색두건은 북쪽지방에서 일반 서민들이 주로 하는 전통풍속이었다. 명성황후와는 절대 맞지 않다”며 거듭 지적했다.

이어 “명성황후(1895. 10. 8)가 일본 자객에 의해 원한을 품고 돌아가셨는데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일부러 흰색 두건을 쓰게 함으로써 왕비를 격하시킬 이유가 무엇이 있겠나. 나 같으면 머리를 웅장하게 그렸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초상화 뒤에 적힌 한자 ‘부인초상(婦人肖像)’에서 ‘부(婦)’자가 며느리 ‘부’자로 보통 시집간 부인을 의미하는 한자라는 것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라면 지아비 ‘부(夫)’를 써야 맞다. 곧 높은 사람을 호칭할 때의 ‘부인(夫人)’을 썼어야 했다.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초상화라면 최소한 한자가 ‘夫人肖像(부인초상)’ 정도는 새겨져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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