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의부 대원들의 모습(1920년대) (제공: 천안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10월 독립운동가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압록강을 넘어 조국 광복의 푯대를 세운 의병 채상덕 선생이 10월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6일 천안독립기념관에 따르면, 채상덕 선생은 1862년 황해도에서 출생했다. 1906년 그의 스승인 최익현이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충남의 곽한일·이남규 등을 찾아가 호남과 호서를 있는 연합전선 구축을 위해 의병을 일으켜달라고 호소했다.

1912년 고종황제는 임병찬에게 비밀칙서를 내려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도록 했다. 채상덕 선생은 1913년 3월 임병찬 등과 함께 13명의 총 대표 중 한명으로 선출돼 활동했다.      

1913년 5월 독립의군부는 일제에게 한국 침략의 부당성을 일깨우는 서한과 국권반환 요구서를 보내는 거사를 계획했다. 하지만 거사 직전 일제에게 발각돼 독립의군부 지도부와 대원들은 대거 피체됐고, 채상덕은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망명했다.

1922년 8월 남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독립운동 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결성했다. 채상덕 선생은 부총장으로 선출돼 간도참변으로 파괴된 한인사회의 복구와 통의부의용군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1923년 초 대한통의부 사이에서 이념적 갈등이 발생하자, 채상덕 선생은 복벽주의 계열의 인사들과 대한의군부를 조직하였다. 또한 대한통의부 의용군이었던 채찬(蔡燦)ㆍ김원상(金元常) 등도 통의부에서 나와 육군주만참의부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을 따라 참의부로 옮겨간 인물들 대부분은 채상덕의 제자와 부하들이었다.

1925년 3월 일제가 참의부의 회의장소를 기습 공격해, 참부의 대원 29명이 전사하는 고마령 참변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채상덕 선생은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있을 면목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했다. 정부는 1995년 채상덕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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