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나주향교 입구에 세워진 석재의 앞면과 뒷면. ⓒ천지일보(뉴스천지)

이계표 원장 “나주향교, 중세 절터였을 가능성 있다”

[천지일보 나주=이진욱 기자] 성균관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와 위용을 자랑하는 전남 나주향교(전남 유형문화재 128호) 입구에 세워진 석재와 향교 내 주춧돌 등 일부가 중세 불교 유물이 아니냐는 주장이 일고 있다.

향교 입구에 설치된 ‘나주향교(羅州鄕校)’ 글자가 새겨진 석재가 중세 불교 유물로 추정된다는 지역주민 이영기(69, 나주시 금계동)씨의 제보가 있었다. 여기에 29일 오후 이계표 호남불교문화원장(조선대 사학과 교수, 전남·광주시 문화재전문위원)의 향교 방문이 이어졌다.

향교 근처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는 이영기씨는 28일 기자와 만나 “나주향교 글자는 필체가 좋았던 조부님이신 이우규씨의 글씨”라며 “평소 서성문(나주읍성 4대문 중 하나) 일대와 향교 주변을 많이 돌아다니는데, 어느날 문득 석재를 바라보니 심상치 않았다”며 기자에게 제보 배경을 설명했다.

현장을 둘러본 이계표 원장은 “일단 돌의 상부 일부가 잘린 것 같고 원래 석재의 뒷면에 ‘나주향교’ 글자를 새긴 것으로 보인다”며 “본래 앞면(현재 뒷부분)을 보면 현재 남아 있는 두 부분(상단 네모 안, 하단 거친 모양)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풍화됐지만 남아 있는 글자가 있지 않을까. 또 석재 하단은 문양이 있지 않을까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탁본)와 실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경상도 숙수사지라는 절터에 중종 때 주세붕(조선 중기 학자)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백운동서원을 세운 사례가 있는데 나주향교 역시 과거에 절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석재뿐만 아니라 나주향교 곳곳에 있는 돌들, 특히 인공이 가미된 것은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일부 돌에서는 불교 연화 무늬도 보인다”고 했다.

이에 따라 향후 나주향교가 세워진 자리가 과거 절터일 가능성에 대한 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학계의 지대한 관심도 모을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다만 “국내 향교의 경우 절터가 아니었더라도 절에 있던 돌을 재활용한 사례가 많다”며 “중요한 것은 과거 금성산 자락이었던 이곳이 과연 절터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보다 객관적인 근거와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는 9월 관련 분야의 전문가와 의논해 연구단을 구성하고 탁본작업, 실측 등 기초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이계표 호남불교문화원장이 29일 나주향교를 둘러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한편 나주시 문화재도록에 따르면, 나주향교(유형문화재 제128호, 1985년 2월 25일)는 987년(고려 성종 6) 8월 12목에 향교를 설치할 때 창건돼 1398년(조선 태조 7)에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쳤을 것으로 추측되며 1839년(헌종 5)과 1869년(고종 6)에 크게 중수했으며, 이후에도 근래까지 수차 중수해 오늘에 이르렀다.

배치는 명륜당, 대성전, 내삼문으로 이어진 남북자오선 축이 전묘후학이며, 거의 경사가 없는 평지 건축이다. 일반적인 전학후묘의 향교와 달리 주문인 외삼문과 내삼문이 문묘부에 이른 과정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나주향교는 지난 2007년 나주향교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83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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