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 (제공: 서울문화재단)

관객 한 명 위한 60분
고독 속 마주하는 내면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사람은 종종 생각지도 못한 상황·장소 등에서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이 당혹스러울 때도 있는가 하면, 잊고 지냈던 낡은 점퍼 속 비상금을 찾은 것처럼 기쁘기도 하다. 매일 접하지는 않지만 익숙하고, 익숙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장소인 극장에서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연극이 마련됐다.

오는 29일 개막하는 ‘천사-유보된 제목’은 극장이라는 공간을 소재로 한 장소특정 퍼포먼스다. 일반 사람에게 극장은 공연이 오르는 장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곳이다. 관객에게 허용된 곳이라고는 객석뿐이다. 그러나 이번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은 평소에 접근할 수 없었던 장소들을 대면하고 그 가운데 자신의 내면을 통찰하게 된다.

극장이라는 장소에서 관객 내면을 마주하게 되는 작품이다 보니,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60분 동안 입장 가능한 관객은 단 한 명 뿐이다. 관객은 미리 받은 MP3 플레이어 속 지시대로 움직이다 자신과 같이 혼자인 누군가를 발견, 그가 나타난 곳을 따라간다. 마지막은 VR을 통해 그동안 거쳐 온 공간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다.

연극 ‘천사-유보된 제목’은 나치에게 쫓겨 망명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대계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저서 ‘역사철학 테제’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벤야민은 저서에서 애장품인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를 통해 도래하지 않은 구원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얘기한다.

 

작품의 연출을 맡은 서현석 연출은 “최근의 대한민국이 이런 천사를 갈구했을지도 모른다”며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거칠면서도 고독하고 몽환적인 연극적 상황을 제안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극장 속 고독한 여정에서 자신의 내면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천사는 얼굴을 과거를 향해 두고 과거에 발생한 대참사를 참사 전의 상황으로 온전하게 되돌리고자 노력하지만, 불어 닥치는 폭풍에 굴복해 알 수 없는 미래로 떠밀린다는 게 벤야민의 생각이다.

관객이 직접 현장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상황을 경험하는 연극 ‘천사-유보된 제목’은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서울시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선보인다. 하루에 40명의 관객만 관람할 수 있으며 사전에 예약된 시간에만 공연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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