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무정’ 스틸.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국내 최초 현대 장편소설 원작… 60년대 이강천 감독 영화화
올해 ‘무정’ 100주년 맞아… 대만서 자료 확인 디지털로 복원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무정’은 1917년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된 이광수의 작품으로, 한국 최초의 현대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근대문명에 대한 동경과 신교육사상, 자유연애의 찬양 등이 주된 주제가 되고 있다. 연재 당시 독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한글 소설의 위상을 높이고, 현대문학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1960년대에 이르러 영화감독 이강천의 손을 거쳐 영화화됐다.

내용은 이렇다. 1951년 1.4 후퇴 때 피난 내려온 ‘문옥(최은희 분)’은 보석상 ‘길 사장(이예춘 분)’의 정부로, 그가 마련해준 집과 다방을 운영하며 홀어머니와 오빠와 고등학생 여동생을 부양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작곡가 ‘상규’를 본 ‘문옥’은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된다.

‘상규’는 병든 아내와 아직 어린 딸을 둔 한 집안의 가장이다. 다방에 자주 드나들면서 ‘상규’와 ‘문옥’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길 사장’은 ‘문옥’에게 줬던 모든 것을 빼앗는다. 이후 ‘문옥’은 ‘상규’의 도움으로 레코드 가게를 열게 되지만 상규의 병든 아내가 죽게 되면서 아내를 속이며 ‘문옥’을 사랑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결국 ‘문옥’과 ‘상규’는 헤어지고, ‘문옥’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온 자신을 반성하며 스스로 살 길을 다짐한다.

이강천 감독은 영화 ‘피아골(1955)’을 통해 제1회 금룡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 평단의 인정을 받던 영화인이었다. ‘무정’을 제작한 영화사 ‘신필름’ 역시 196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선도했던 곳으로 이 작품의 제작을 위해 당대의 스타 최은희, 유명 조연 배우 허장강 등을 동원했다.

▲ 영화 ‘무정’ 스틸.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그러나 영화 ‘무정’은 필름이 유실돼 반세기가 넘는 기간 그 실체를 기록상에서만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영상자료원(원장 류재림, 영상자료원)은 소설 ‘무정’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올해 대만영상자료원(TFI)로부터 이강천 감독의 ‘무정’을 수집했다. 이후 지난 2015년 TFI의 협조를 얻어 대만 현지 조사원을 운영, 수출 기록이 있는 한국영화 목록을 토대로 TFI 소장 자료를 검색했다.

그 결과 영화배우 최은희의 참여 작품인 ‘지정(至情)’을 찾았고, 추가 확인을 거쳐 해당 작품이 ‘무정’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영상자료원 측은 2016년 5월 TFI를 방문해 필름 내용을 확인했고, TFI 측과의 수집 협의를 통해 문화적 교류 차원으로 원본 필름을 기증받았다.

이번에 발굴된 영상은 16㎜ 필름 프린트로, TFI가 1992년 대만 국방부로부터 이 필름을 기증받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작품이 대만 군부대원을 대상으로 순회 상영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배급 시 필름 복사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본래 컬러였던 원본을 흑백 필름으로 전환했을 것이라 예측된다.

원제목인 ‘무정(無情, 정이 없음)’이 ‘지정(至情, 정이 과도함)’으로 변경된 점은 해외 배급 과정에서 당시 배급사가 상업성을 고려해 이와 같이 제목을 수정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설 ‘무정’에선 돈을 위해 기생이 된 ‘영채’와 전근대적 여성인 ‘병욱’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성 ‘형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영화는 남성에게 의존해 살아온 ‘문옥’이 신여성으로서의 독립심을 갖게 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 영화 ‘무정’ 스틸.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1950~60년대를 장식한 주요 영화감독 이강천은 ‘피아골’이 문화재청 제346호 문화재에 등록되는 등 예술적 성과를 높이 인정받은 영화인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영화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필모그래피의 절반인 14편 정도다.

영상자료원은 “이번 영화 ‘무정’ 발굴은 사라진 1960년대 한국영화의 공백을 채운다”며 “동시에 한국영화사의 대표적 감독의 영화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탐구하는 데에 일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4K 화질로 디지털 변환된 영화 ‘무정’은 영상자료원에서 진행 중인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 상영전을 통해 최초 공개되며, 오는 5월 23일과 31일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상영전에서는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 ‘두고 온 산하’ ‘낙동강 칠백리’를 비롯해 이두용 감독의 ‘피막(오리지널 버전)’, 임권택 감독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김윤모 감독의 ‘무적의 박치기왕’ 등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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