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손석한 원장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19일 천안함 희생 장병 추모 연설에서 장병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른 다음에 그들이 편안히 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바로 그 순간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식적이고, 연기력이 부족한 악어의 눈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대통령의 위로를 감사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여하튼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만큼 슬픈 일이라는 사실에 동감하고 있다.

대통령의 눈물 이전에 우리는 유가족의 처절한 눈물을 생생하게 지켜봤고, 아들을 군에 보냈거나 또는 보내려는 수많은 어버이 역시 눈물을 함께 흘렸다. 그렇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눈물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들만 생기면 좋으련만, 어디 세상 사는 일이 꼭 그럴 수만 있으랴.

슬프고 힘든 일은 예상치 못하게 우리 앞에 텅 하니 나타나고, 한 가지 슬픔이 가시면 또 다른 슬픔이 오는 과정이 어쩌면 인생의 진짜 모습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 그리고 대한민국 장병들의 숭고하고 억울한 희생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 보통 국민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는 ‘함께 울면서 슬퍼합시다.’라고 제언한다.

눈물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물은 단순하게 슬픈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기능 외에 ‘치유’와 ‘질병 예방’의 효과를 갖고 있다. 그래서 슬플 때는 마음껏 우는 것이 제일 좋다. 가뜩이나 슬퍼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유가족들에게 필자는 감히 “실컷 더 우세요”라고 말씀드린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혹은 남아 있는 다른 가족이 더 슬퍼할까봐 마음껏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그저 참으면서 눈물을 삼키는 어버이들은 ‘애도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애도 우울증’이란 말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다음 애도의 과정에서 슬픔이 치유되지 못한 채 병으로 발전한 우울증을 말한다.

자식 잃고 나서 우울증 걸리는 것이 뭐가 무섭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저 세상에 가 있는 사람은 분명히 남은 가족이 우울증으로 평생 고생할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면서 슬픔을 충분하게 느끼고 해소한 다음에 먼 훗날, 아니 지금부터라도 서서히 가족의 희생과 죽음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바다를 사랑했고, 조국을 사랑했기 때문에 기꺼이 목숨을 바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영웅들이라고. 따라서 마음껏 목 놓아 울라. 그러면 신기하게도 슬프고 고통스런 감정이 점차 엷어질 것이다. 눈물을 흘림으로써 자신의 슬픈 마음을 없애주는 ‘자기치유’의 과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지 않게끔 해주는 눈물은 슬픔을 이겨내는 강력한 치료제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시 슬퍼지면 어떻게 할까? 또 울면 된다. 그러나 이제는 울기만 하지 말고, 고인과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울어 보자. 국민들도 울어 보자.

대한민국은 지금 애도의 과정에 있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정확한 규명, 앞으로의 향후 대책, 국방의 재정비 등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대통령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국군 통수권자로서 책임을 통감한 회한의 눈물일까, 아니면 장병들을 마치 자식처럼 여겨서 그들의 희생을 슬퍼하는 눈물일까, 지방 선거를 앞두고서 유권자들의 마음에 다가서기 위한 악어의 눈물일까, 대통령인 나도 이렇게 슬퍼하니까 국민 여러분들도 마음껏 슬퍼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의사소통의 눈물일까.

대통령 자신은 왜 눈물을 흘렸는지를 알 것이다. 아니 모를 수도 있다. 어떤 강력한 무의식적 동기가 작용해서 혹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의식적인 이유와 다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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