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참여한 뒤 대청도 해역에서 침몰한 쌍끌이어선 금양98호 실종자 가족들이 20일 오후 인천시 중구 연안동주민센터에서 마련된 가족대기실에서 사고수습대책본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들과 대책회의를 갖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포괄적 국가재난시스템 없어 방치

[뉴스천지=유영선 기자] 지난 4월 2일 저인망 쌍끌이 어선 금양98호 선원 9명은 국가 재난 사고를 맞아 군의 협조 요청을 받고 서해상 천안함 침몰 사건현장에 달려갔다.

주저 없이 국가의 부름에 임한 금양98호는 2일 천안함 수색작업에 참여했다가 귀환하던 중 캄보디아 화물선과의 충돌로 침몰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선원 2명이 숨지고 나머지 7명은 실종됐다.

3일 김종평 씨의 시신이 최초로 발견된 후, 같은 날 인도네시아인 선원인 람방 누르카효 씨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선원 대부분은 독신으로 평생 바다와 함께한 ‘바다 사나이들’이었다. 사고 발생 20일 만인 22일, 장례절차 등을 협의할 가족이 없어 열흘 이상 병원에 안치됐던 고 김종평 씨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김 씨의 시신은 인천가족공원에서 화장된 후 동 납골당에 안치됐다.

하지만 빈소를 지키는 가족도, 조문객도 없어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실종선원들의 생환에 대한 기대를 접은 채 시신을 인양해 온전한 장례식만이라도 치러주기를 바라고 있다.

술 한 병과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사고해역을 찾아 간 한 실종자 가족은 “망망대해에 뭐 볼 것이 있나… 가족이 여기에 빠져서 운명을 달리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천안함 장병과 고 한주호 준위를 기리는 국민적 추모 열기와는 달리 그들이 치룬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민군 합동조사단과 국제조사단, 인양업체 등 첨단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해 수색 및 인양작업을 지원했다.

하지만 군은 백령도에 모든 장비와 인력이 동원됐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도왔던 금양98호 실종자 가족들의 구조요청은 외면했다.

금양98호는 여전히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지점 사고해역 80m 아래 바닷속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금양98호 침몰사건은 일반 선박사고완 달리 천안함 실종 장병 구조작업에 동참했다 발생한 것으로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하지만 정부 각 기관에서는 뚜렷한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한 채 지금껏 미온적인 자세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일 ‘금양98호’ 사고수습대책본부를 비롯한 인천시청, 농림수산식품부, 인천해경, 선사, 실종자 가족들은 대책회의를 갖고 임시분향소 설치 및 사고 진행상황, 보상 문제에 관해 논의했다.

임시합동분향소 설치와 장례 절차 및 비용부담을 두고 논의하는 자리에서 각 기관들은 각각 한 발짝 뒤로 물러서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사고수습대책본부장인 인천시 중구 나봉환 부구청장은 “행정적인 지원은 가능하지만 재정적인 부분은 사실상 어렵다”며 “관련된 각 기관에서 이 문제를 조속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농림수산식품부에 문서를 보내고 있지만 구체적인 답변이 오지 않고 있기에 현실적으로 중구청 사고수습대책본부에서 이번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윤대호 사무관은 “합동분향소 건에 대해 상부에 이야기했지만 1차적으로 재정적 지원이 곤란하다는 답변이 나온 상태”라며 “다만 인천시와 중구청, 선사 측에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인천시청도 뚜렷한 대책 없이 금양98호 사건을 관망하는 입장을 취하기는 마찬가지다.

선사 측 역시 “금전적 여력이 없어 힘들다”며 정부 기관에 도움을 호소하는 입장에 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답변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실종자 허석희(33) 씨의 숙부인 허용진(59) 씨는 “누가 왜 무엇 때문에 거기에 갔나. 다 아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분향소 문제를 의논하자는 건데…”라며 “내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가? 당신들 친인척이라면 그렇게 하겠는가”라고 관계 기간들의 무관심에 울분을 터트렸다.

금양98호 사고 관련 기관들의 책임회피로 인해 실종자 가족들은 마음의 상처가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정부 주도 구호대책 마련 시급
재해대책 및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재난구호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하고 정부가 전면에 나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재해극복범시민연대 육광남 이사장은 “천안함만 주목받고 금양호가 관심 밖에 있는 것은 문제가 크다”며 “천안함 사건과 같은 개념으로 보고 천안함 지휘본부에서 함께 신경을 써 주거나 정부차원에서 전문 대책반을 마련해 조속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고진광 대표도 “정부가 천안함과 금양호를 너무나 차별하고 있다”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나서서 이 일을 정리해주고 범정부차원에서 수습대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처음부터 너무나 엄청난 사건에 힘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그로 인해 발생한 사고에 대한 조처는 미흡했다”며 “우리나라는 항시 재난사고가 났을 경우 그것에 대한 전반적인 대처가 미흡했는데 이번에도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선박사고의 경우 선사 측과 보상 및 장례 절차를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금양98호의 경우는 군의 요청으로 국가재난을 도우려다 발생한 사건이기에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에 벗어나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민간인 수습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고진광 대표는 국가재단구조 시스템에 문제점이 드러날 시 민간단체가 적극 나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삼풍백화점 붕괴 때 정부가 실종자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민간단체가 나서서 실종자도 사망자와 같은 예우를 받게 했다는 예를 제시했다.

이번 금양98호 침몰 사건으로 인한 실종자 방치문제는 단순한 책임 회피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국가재난시스템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좀 더 포괄적이고 민ㆍ관에 동일한 처우가 보장되는 국가재난시스템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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