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행복이란 무엇일까? 물질적으로 풍요하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은 다 불행한 것일까?
이 사안은 유사 이래 모든 종교인과 철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는 물론이고 요즘에는 사회학과 사회복지학의 주요 화두까지로 등장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흔히 거론되는 게 ‘국민소득과 행복지수가 비례하느냐’ 하는 것이다. 해답은 여러 관점에서 제기되지만 결론은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데로 모아진다.

2006년 7월 영국 레스터 대학 애드리안 화이트 교수는 당시 178개 국가를 대상으로 건강(평균수명), 부(富)(1인당 국내총생산(GDP)), 교육(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 등 3가지 요소를 토대로 작성한 ‘행복지도’를 발표했다. 화이트 교수는 이 지도에서 ‘인구를 유지하고 에너지 소비를 감당하는 데 필요한 토지 면적’을 의미하는 ‘생태학적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이라는 신개념을 창안해 분석틀로 사용했다. 이 개념은 한 국가가 국민 건강과 생활 만족을 위해 자원을 얼마나 적절하게 쓰고 있는지를 가리킨다.

행복지도에 따르면 소득이 높고 평균수명이 길더라도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환경을 훼손한 국가는 순위가 낮았다. 또 국민이 자국 문화나 전통에 대해 얼마나 만족스러워하는지도 행복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이 조사에서 화이트 교수는 영국 신경제학재단(NEF)이 발표한 행복지수를 토대로 여기에 3가지 요소별로 가중치를 적용해 수치화했다.

이에 따라 분석한 결과, 덴마크가 1위, 스위스가 2위, 오스트리아가 3위를 차지하는 등 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미국은 23위, 한국은 102위에 그쳤다. 최하위인 178위는 콩고민주공화국이었다. 화이트 교수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1인당 GDP가 3만 1500달러에 달하는 경제대국 일본의 행복 순위가 90위인 반면 1인당 GDP가 1400달러밖에 안 되는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부탄은 8위에 올랐다”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경제 수준만을 높이는 데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 자료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한국과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일본의 경우 세계 제 2위의 경제대국인데도 정작 일본 국민의 행복도는 사실상 하위권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국가는 부자지만 국민은 가난하다’는 일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결과라는 점에서 일본이외의 국가에서는 비아냥 섞인 비평도 뒤를 이었다. 한국에서는 100위 밖으로 밀려난 점과 부탄왕국이 8위에 올랐다는 점이 더 부각됐다.

위에 거론한 것과 같은 조사결과는 이밖에도 많다.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은 오늘날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다. 현재 미국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5%도 안 되지만 미국은 세계총생산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미국 가정의 30% 이상이 3대 이상의 차를 보유하고 있다.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미국인은 과연 세계에서 최고로 행복한가? 미국의 행복지수가 유럽복지국가에 비해 높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조사에서 확인됐다. 심리학자인 프레이와 스투처(Frey & Stutzer)의 조사에 따르면 1945년 미국인의 행복지수는 2.4였으나 1991년의 행복지수는 2.2였다. 소득수준의 증가가 행복과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죽하면 2007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앨 고어 전 부통령이 “미국의 물질적 풍요가 역사상 최고에 이르렀지만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의 수 역시 최고에 달했다”라고 했을까?

천안함 사태로 나라가 어수선한 때에 갑자기 행복론을 거론한 것은 요즘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자들이 너도나도 ‘잘사는 도시’만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이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지역발전 10대 공약’은 2017년까지 경부·호남·수도권 고속전철 조기 완공, 2012년까지 보금자리주택 74만 가구 공급 등 개발위주가 대부분이다. 민주당도 대동소이하다. 토목과 건축위주의 개발공약이 넘쳐난다. 이제는 개발위주가 아닌, 진정으로 지역민의 행복을 위한 차원 높은 공약도 빛을 보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 고층빌딩으로 뒤덮인 도시민이 행복할까, 아니면 사람위주의 정책이 펴지는 소도시민이 행복할까는 머지않아 판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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