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앞은 볼 수 없어도 제 삶엔 감사가 넘칩니다”
▲ 윤재송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뉴스천지=박혜옥 기자] “어느 날 청각·시각 중복 장애를 갖고 있는 헬렌 켈러에게 ‘둘 중 하나가 회복될 수 있다면 어떤 장애가 먼저 회복되길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 윤재송 회장이 던진 질문이다. 이어 윤 회장은 “헬렌 켈러에게서 돌아온 답은 질문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각’을 선택했겠지만 그녀는 ‘청각’을 선택했어요. ‘시각 장애는 사물로부터 분리하지만 청각 장애는 사람으로부터 분리시키기 때문’이라는 게 헬렌 켈러의 이유였다”고 말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들었을 때는 별 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장애의 벽에 부딪히며 사는 이들에게는 구구절절 절실하게 다가오는 말이다.

인터뷰 내내 ‘감사’라는 말을 입에서 떼지 않은 윤재송 회장에게 장애는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삶에 눈 뜨게 한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윤 회장이 몸담고 있는 선교회는 한 미국인 신부와 함께 몇 명의 시각장애인이 하느님 말씀을 전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인왕 셀>이라는 가톨릭 학생회를 만들어 봉사하면서 1979년 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를 만들게 된다.

이후 선교회는 ‘무엇을 기여할 것인가. 우리는 주님의 은총 속에서 사는데 우리보다 더 어려운 중복 장애인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선교회 안에 중복 장애인들을 보호하는 하상장애인종합복지관을 만들어 사회의 약자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을 돕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윤 회장에게 힘든 점을 물어보니 “어느 교수가 얘기했듯이 시각장애를 가지면 노동력의 95%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어떤 능력이나 잠재성을 가지고 있어도 그 자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능력 자체를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현실이죠”라며 “사람은 인정받는 재미로 삽니다. 누구나 그런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들을 향한 사회적 편견이 활동하는 데 너무도 많은 위축감을 줍니다”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 “선교회에서 많은 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단순 종교 단체이기에 물질적으로 큰 후원을 받지 못한다”며 “신앙 서적을 만들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후원을 받아서 운영하기도 하지만 재정적 어려움이 따른다”고 토로했다.

물론 주교회의에서 지원을 받기도하지만 재정적 한계는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재정적 어려움도 윤 회장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막지는 못했다.

윤 회장은 “선천이든 후천이든 장애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선천은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단련이 되고 점차적으로 적응하지만 중도 실명인들은 실명 자체 때문에 가정 해체 및 직장을 잃어버린다”며 “그런 위기에 처해있는 장애인들이 주님의 말씀으로 삶의 희망을 얻게 되고,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종교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전했다. 바로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윤 회장에게 힘이 되고, 보람이 된다고 한다.

윤 회장은 “선교회 설립 목적이 시각장애인 상호 간의 말씀 전파, 친목 도모, 복지 증진”이라며 “이를 위해 매 주일 미사를 드리고 있다. 주일 미사는 지도 신부님이 한 주 하고 나머지 주일은 서강대에서 예수회 신부님들이 미사를 집전해주신다”고 전했다.

▲ 윤재송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선교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윤 회장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현재의 삶 이전에 윤 회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며, 푸른 바다 등 윤 회장의 눈은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은 눈앞의 사물도 볼 수 없는 삶이지만 그는 이나마 삶이라도 유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심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공존하는 삶에 깨기 어려운 두꺼운 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는 지금의 삶에 기쁨을 느낍니다.”

윤 회장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과 판단력을 주신 것, 제 마지막 순간에도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할 뿐”이라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제가 감히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을 하는 것도 겸손치 못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며 “그저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이 앞을 못 보게 된 것은 그의 군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30살 전후 군대에서 육군 항공사령부 조종사로 근무하고 있던 어느 날 망막출혈이 생긴 것이 실명으로 이어졌고 그 일로 전역을 하게 됐다.
그 후 윤 회장이 실명을 극복한 방법은 감사함을 통해서였다.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신다”며, 친구 얘기를 꺼냈다.

윤 회장은 “옛날에 어렵게 사는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어머니께서 나무 장사를 했는데 남들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해서 보다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번 돈 300원은 생활비로, 50원은 아들을 위해 저축하는 삶을 살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 어머니의 삶을 지켜봤던 친구는 매사에 감사할 줄 알았다”며 “현재는 국립 대학교 교수로 있는 친구의 삶을 보면서 감사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제가 실명한 후 어머니께서 새벽마다 뒷마당에서 무릎 끊고 간절히 기도하셨다”며 “제가 주님의 은총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정성과 믿음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했다.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고, 작은 문제라도 상대방 입장에서 배려하는 삶. 윤 회장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윤 회장은 “긍정적인 사고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오늘 이만큼 밝게 살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한다”며 “특별한 재주도, 기술도 없는 저는 열심히 살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사회와 국가에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사회에 바라는 것은 시각장애인도 정말 내 형제며, 이웃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며 “시각장애인들도 능력 있는 사회의 일원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 그들도 인정받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떳떳한 이웃으로 대해주길 바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에서도 적은 예산으로 여러 가지 정책, 사회복지에 많은 할당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에게 주어지는 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산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이러한 시련이 다만 어느 특정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라도 올 수 있는 것”이라며,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윤재송 회장이 바라는 것처럼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겉으로 평가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진실을 보며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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