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항상 명승부에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지난주에 끝난 제74회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는 단순한 스포츠 승부 이상의 감흥을 선사했다. 미국 프로골프대회 가운데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4대 메이저대회로 꼽히는데 그 중 맨 처음 열리는 게 마스터스대회다. 때문에 마스터스대회는 진정한 의미의 시즌오픈을 알리는 골프계의 춘계축제나 다름없는데 이번에는 섹스 스캔들로 필드를 잠시 떠났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복귀하는 무대여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이번 대회를 지켜본 골프 팬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관심사가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열성 골퍼들은 최경주, 양용은 등 한국출신 혹은 한국계 미국인인 앤서니 김 등이 모두 톱10에 드는 선전을 펼친 데 대해 가슴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일반적인 팬들의 경우 스캔들이야 어찌됐든 실력 하나로만 본다면 단연 세계 최고인 타이거 우즈(그는 현재 세계 랭킹 1위이다)가 5개월여 만의 복귀무대에서도 그만의 전매특허인 환상의 컴퓨터 샷을 날려 우승컵을 안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합이 다가오면서 우즈가 어느 정도 상위권 성적이야 내겠지만 우승은 힘들 것이라는 이상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골프만이 지니는 묘한 특성 때문이었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스포츠 가운데 심리적 요인이 가장 크게 경기력을 좌우하는 것으로 사격, 양궁 등 이른바 슈팅종목과 골프를 꼽는다. 특히 골프의 경우는 기량도 중요하지만 그날의 컨디션과 선수 자신의 마인드컨트롤이 성적을 좌우한다는 게 정설이다. 골프는 흔히 기량(혹은 기술), 코스 매니지먼트(공략전술)와 아울러 마인드컨트롤을 3대 승부요인으로 꼽는다. 특히 심리적 효과는 대단히 중요한데 이는 그린 위의 퍼트에서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말 골퍼들의 경우 전날 부부싸움을 했거나 회사에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 이상하게도 공이 잘 맞지 않고 짧은 퍼트가 잘 안 되는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우즈가 팬들의 질타를 의식, 자숙과 근신과정을 거쳐 처음 복귀하는 이번 무대에서 심리적으로 온전한 상태는 아닐 것이라고 보았다. 그 빼어난 기량이야 여전할 터이지만, 그리고 그가 아무리 현역 PGA최다승을 기록 중인 강심장이라 하더라도 팬들의 곱지 않은 이목을 극복해낼 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그의 신기의 샷은 여전했지만 그린위에서의 퍼팅실력은 엉망이었다. 특히 톱클래스 골퍼 가운데 타의 추종을 불하하는 마술에 가까운 퍼팅기술은 좀처럼 보여주지 못했다. 마지막 4라운드에서 3미터 이내의 짧은 퍼팅을 놓치는 것을 보며 나는 “우즈도 역시 인간임에 틀림없구나”라고 생각했다. 전 같으면 그는 반드시 넣어야 할 승부홀에서는 정말 기적처럼 퍼팅을 성공시킨 후 특유의 어퍼컷 세리모니를 과시했을 터였다. 그도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뭔가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불안정한 상태임을 퍼팅장면에서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즈의 이 같은 심리적 위축감은 당연히 그의 잘못된 사생활이 원인임은 불문가지일 터이다.

우즈의 어정쩡한 복귀에 비해 찬란히 빛난 것은 단연 필 미켈슨이었다. 이번에 우승한 미켈슨의 마지막 라운드 모습은 한편의 가족영화나 다름없었다. 2미터짜리 버디 퍼트에 성공한 미켈슨은 아내 에이미에게 달려가 뜨겁고 긴 포옹을 나눴다. 지난해 잇따라 유방암에 걸린 아내와 어머니의 투병생활을 응원하기 위해 유방암 예방 캠페인의 상징인 ‘핑크 리본’을 모자에 단 채 경기에 임했던 미켈슨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렀고 이를 본 전 세계 시청자들도 함께 열광했다. 미켈슨의 가족사랑은 유명하다. 지난해 5월 아내가 유방암 선고를 받은 후 그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아내의 병간호에 나선 그는 지난해 US오픈대회도 출전을 포기했다. 그는 또 지난 2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매치플레이챔피언십 대회에도 불참하고 가족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

모범가장 미켈슨이 가정에 소홀한 우즈를 누르고 우승한 이번 마스터스대회는 가정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흥미만점의 드라마였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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