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시민들이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살펴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안중근 의사 서거 107주기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오로지 나라의 안위만을 걱정했던 안중근 의사.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이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마지막 생을 마치게 됐다. 오직 나라의 독립만을 위해 살았던 안중근 의사, 그의 생애는 어땠을까.

◆격동의 시대, 안중근 의사 탄생

1876년 강화도조약에서 1905년 을사늑약까지 30년간 조선은 국난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임오군변(1882), 갑신정변(1884), 동학농민전쟁(1894), 청일전쟁(1894), 을미사변(1895), 러일전쟁(1904) 등의 격변을 거치면서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해 갔다.

구국을 위한 계몽운동과 의병 투쟁에도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되면서 한국은 사실상 식민지 상태에 놓이게 된다. 안중근 의사는 이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1879년 9월 2일 태어났다.

▲ 안중근 의사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1904년, 일제의 야욕으로 인해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일제는 전쟁의 명분으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고 동양의 평화를 이룩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자 침략의 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을사늑약을 강제하게 된다.

그해 안중근은 산둥을 거쳐 상하이에 도착했고, 거기서 그는 알고 지내던 프랑스 신부로부터 교육 등 실력 양성을 통해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게 급선무라는 충고를 듣고 다음 해 귀국했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이 되면서 반일운동을 행동화했다. 7월에 한일신협약이 체결되자 북간도로 망명했다. 3, 4개월 뒤에는 노령으로 갔다. 노브키에프스크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 한인청년회 임시사찰이 됐다.

1908년 6월에 특파독립대장 겸 아령지구군사령관이 돼 함경북도 홍의동의 일본군을, 다음으로 경흥의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해 격파했다. 제3차의 회령전투에서는 5000여명의 적을 만나 혈투를 벌였지만 중과부적으로 처참하게 패배했다.

▲ 단지한 안중근 의사의 수인

◆‘동의단지회’ 결성

안중근1909년 2월, 크라스키노의 하리 마을에서 11명의 동지의 동의단지회를 결성했다. 동의단지회는 ‘조국독립의 회복과 동양평화의 유지’를 위해 헌신할 것을 목표로 삼고 왼손 약지의 첫 관절을 잘라 단지동맹을 맺었다. 안중근을 중심으로 한 동의단지회는 의병 재기를 다짐한 애국결사였다.

그해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 역에 잠입해 역 플랫폼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됐다.

◆안중근 의사 불법 인도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된 안중근은 강압에 의해 불법적으로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 신병이 인도됐다. 그리고 11월 3일 뤼순감옥에 입감된다. 일제의 법원은 민선 변호인단을 금지하고 언론도 봉쇄한 채 재판을 강행했다.

안중근은 자신이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며, 임무 수행 중에 포로로 잡힌 것임을 강력히 주장했으나 묵살된 채 마침내 1910년 2월 14일 사형이 언도됐고, 3월 26일 형이 집행됐다. 그는 사형이 선고를 받은 뒤 순국할 때까지 상고도 포기한 채 옥중에서 유묵을 써내려갔다. 그건 안중근의 혼(魂) 그 자체였다. 또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 서울 중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안중근 의사의 재판 모습을 재현한 모형. ⓒ천지일보(뉴스천지)

◆남겨진 유서 ‘동포에게 고함’

3월 26일 순국한 안중근 의사는 유서를 남겼다. 글은 이렇다.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도달치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유서 속에는 완전한 대한민국의 독립을 꿈꾼 안중근 의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어느덧 일제 강점기는 끝났고 한국에는 평화가 왔다. 하지만, 과연 완전한 독립이 이뤄졌다고 우리는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안중근의 유서 속에 담긴 글을 고민해봐야 하는 순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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