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시(詩) ‘황무지(The Waste Land)’는 영국의 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S Elliot)이 1922년에 발표한 암울한 무드를 자아내는 시다. 전체가 모두 5부로 된 길고 난해한 시로서 엘리엇은 이 시로 194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죽은 자의 매장’이라는 이 시의 1부 첫 구절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이라고 읊었다. 이어서 ‘4월은 죽은 대지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봄비가 잠자는 뿌리들을 흔들어 깨운다’고 하면서도 ‘망각의 눈(forgetful snow)이 땅을 덮어주는 겨울이 오히려 따뜻했다(Winter kept us warm)’고 쓰고 있다. 여기까지의 초입은 비교적 가지런하고 쉽게 감흥을 느끼게 해준다.

그 다음부터는 시와 인생에 대한 연구가 모자라서 그런지 읽어 내려가기가 너무 어둡고 무겁고 부담스럽다. 시에서 음미하는 엘리엇의 과거에 대한 추상은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시는 또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인지 비탄(悲嘆)인지 자조(自嘲)인지 냉소인지, 비감(悲感)을 드러내는 독백인지 모를 것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꼬이면서 이어져 나간다.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서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죽은 자의 매장’ 끝자락에 있는 구절이다. 엘리엇은 이 구절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봄비가 잠자는 뿌리들을 흔들어 깨우는 그 4월이 죽어 매장된 사람도 깨우더냐’고 냉소적인 반문을 하고 있는 것 같다.

1차 세계대전 후 모든 것이 피폐하고 황폐해진 상황을 배경으로 시를 쓴 엘리엇은 인생과 현실이, 생명이 싹트고 자라는 봄과 같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인생과 현실은 봄이 와도 여전히 불모의 땅 황무지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일깨우는 봄이 엘리엇에게는 차라리 고통스럽고 잔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망각의 눈에 겨울 땅이 덮여 있듯이 망각에 묻혀 있으면 좋을 고통스러운 퇴행적 기억들이나 일깨워주는 봄이 잔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봄보다는 겨울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의 봄, 한국의 4월이 잔인하다. 금년 봄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았던 겨울을 뚫고 와서 그런지 유별나게 춥고 바람이 많고 바다가 차다. 생명을 되살리는 부활(復活)의 봄을 시샘하듯 몸통이 빠져나간 겨울이 아직도 차가운 꼬리를 반갑지 않게 흔들어 대고 있다. 봄이 봄 같지 않으면 차라리 겨울이 좋다. 계절의 섭리가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차라리 소나기 몰려오는 불볕더위의 여름이든가-.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봄이 따뜻한 넒은 길로 막 접어들 무렵인 지난 3월 26일 강풍(强風)에 파도가 거칠고 칠흑같이 캄캄한 밤 9시 30분경 우리 해군의 초계함인 1200톤짜리 천안함이 ‘꽝’ 하는 원인 모를 폭발음과 함께 침몰했다. 선체가 두 동강이로 갈라져 백령도 연안의 차디찬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았다. 104명의 탑승 장병 중 58명은 구조됐으나 꽃다운 젊은이 46명은 선체를 머금고 내놓지를 않는 바다 밑바닥의 선체에 갇히게 됐다. 선체를 갈라놓은 그 폭발음은 우리 모두의 가슴도 찢어 놓았다.

그날 이후로 살을 에는 어설픈 봄 바닷물에 잠긴 자식 같은 젊은이들 생각에 편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식을 둘이나 해군에 보내놓고 복무를 마치고 다시 품안으로 돌아올 때까지 마음 졸였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몸이 식어가고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았다. 줄곧 그 젊은이들과 함께 했다. 그러니 이들을 낳고 애지중지 키운 부모, 코흘리개 시절부터 울고 웃고 정들이고 산 형제자매들의 마음이야 오죽 하랴. 뭐라고 위로하랴.

‘살아 있으라, 바다 밑이 차고 어둡더라도 꼭 살아 있으라. 이것은 그대들의 최고 사령관인 대통령의 엄숙한 명령이요 기도로 알라. 뿐만 아니라 그대들이 충성하고 목숨 바쳐 지키고자 한 그대들의 부모형제와 친구들, 그리고 온 국민의 한결같은 간절한 기도이며 염원이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고 졸음이 몰려오고 무섭더라도 희망의 끈을 절대로 놓치지 말라. 우리가 서둘러 갈 테니 조금만 더 버텨라.’

천안함의 폭발이 우리의 가슴은 찢어 놓았으되 국민의 마음이 이 같은 기도와 염원으로 하나 되는 것을 갈라놓지는 못했다. 대통령이 이 황당한 사건 수습을 진두지휘하는 보기 드문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통령은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대포와 총구가 노리는 구조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위험천만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로서 우리는 대통령과 가족 그리고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 엄청난 시련을 안겨준 봄이 무섭다. 바다가 넘실대면 공포감이 밀려온다. 3월의 봄, 4월의 봄이 잔인하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 된 마음으로 절망을 딛고 가족들을 위무하고 그들과 함께 손잡고 다시 털고 일어나야 한다. 의혹 한 점 없이 진상규명을 하고 응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련은 행복과 구원의 씨앗이다. 엘리엇이 마지막 5부 ‘천둥이 말한 것’에서 ‘우르릉 꽝’ 하는 우렛소리로써 황무지에 단비가 가까워졌음을 암시했듯이, 절망에서 ‘구원’을 보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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