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식이 다 끝나고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사람 사이에는 귀천의 차별이 없어야 하며 종교도 편견 없이 하나 돼야 한다”

[뉴스천지=박혜옥 기자] 애국지사 월남 이상재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추모회가 열렸다.

29일 서울YMCA 주최로 열린 ‘월남 이상재 선생 제83주기 추모회’에는 이상재 선생의 고손자 이상구 박사를 비롯해 이윤구 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 회장, 이학영 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 운동가, 청년 운동가, 교육자로서 이상재 선생의 뜻을 기렸다.

손용호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상재 선생은 을사조약으로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신민회와 횡성기독교천녕회를 통해 애국계몽운동에 심혈를 기울였다”며 “청년들에게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 양성을 강조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고 전했다.

이윤구 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상재 선생은 쓰러져 가는 나라의 기둥을 붙잡고 지킨 몇 안 되는 분”이라며 “특히 명예 생각 안하고 자기 생명의 위협이 와도 쓰러져 가는 나라를 붙잡고 마지막까지 몸부림을 치셨으며 이 나라의 장래를 지켜 줄 청년들을 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기르신 분”이라고 전했다.

또한 조기홍 서울YMCA 이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상재 선생의 뒤를 따르는 우리들도 구습과 옛 사람의 틀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과 정신으로 새 역사 창조의 선구자가 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재 선생은 충남 서천 태생으로 38세 때 중앙정부 관료직에 진출했으나 1902년 개혁당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다. 그때 읽은 요한복음을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을 벌인 신간회 초대 회장을 비롯해 서울YMCA 첫 한국인 총무 등을 역임했다. 신간회 회장으로 재임하던 1927년 3월 29일 서울에서 소천, 사회장으로 안장됐으며 광복 후인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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