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의 봉은사 직영사찰 문제가 종교문제에서 정치문제로까지 번져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을 두고 좌파니 운동권이니 하고 들먹이며, 현 정권에 협조적이지 못한 모습에 불만을 표한 것이 사건 발단의 불씨가 됐다.

사건은 지난해 11월 13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 그리고 신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가진 조찬회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교계와 정치계가 본래 두터운 상관관계가 있으면 안 되겠지만 대한민국 문화재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의 특성상 문화재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적지 않은 예산을 지원받는다는 데서 둘의 애매한 관계가 성립된다.

당시 자리를 주선한 전임 지관 총무원장의 종책특보 김영국(현 총무원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은 기자회견에서 “종책특보는 불교계와 행정부, 정당 간 정책현안을 조정·조율하고 협의하는 일을 한다. 그날 자리도 그런 자리였다”며 “불교는 대한민국 문화재의 60%를 갖고 있기에 의도하지 않게 국가 법령으로 지원도 받지만, 제한도 받는다. 불교가 정부 문화재 정책만큼은 대등한 위치에서 조정해야 한다고 해서 마련한 자리”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날의 조찬회동은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종교와 정치가 갖는 ‘예산’과 ‘표심(票心)’이라는 서로의 약점으로 인해 그 취지가 흐려지고 말았다.

당시 조찬회동에 배석했던 김영국 위원은 당시 안상수 원내대표가 명진스님을 가리켜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나둬서 되겠느냐”는 말로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만드는 데 입김을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일명 ‘외압설’이다. 반면 안 원내대표는 명진스님이 누군지 잘 모르며, 당시 조찬회동에 김영국 씨는 참석하지 않았었다고 말하는 등 봉은사 외압설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렇지만 명진스님이 과천 소재 연주암 선원장을 지내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부처님오신날만 되면 한 상에 마주했던 사이라 안 대표의 ‘모르쇠’는 ‘모르쇠’가 아닌 ‘거짓말’임이 드러나 정치인으로서 도덕성에 타격을 입은 격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비단 안 원내대표만의 도덕성 결여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 조계종의 도덕성 문제에도 일격을 가했다. 종단은 종법 절차에 의해 합법적으로 처리했다고 강조하지만 봉은사의 지위변경을 결정한 종회와 총무원이 지난 몇 달 동안 정작 당사자인 명진스님과 봉은사 신도들과는 아무런 소통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역시 ‘외압은 없었다’고 하니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알 길이 없다.

누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번 사안이 주는 가장 큰 문제는 가장 청렴하고 진실해야 할 종교계 지도자와 정치인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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