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나보고 보수꼴통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기보다는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아들 하나, 딸 둘이 있는데 딸 둘을 모두 가정대에 보냈다. 그리고 재학 시절부터 졸업하면 일 년 안에 시집가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다. 다행히 아이들이 내 뜻을 잘 들어주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이듬해 시집을 보냈다. 아이도 둘씩 낳았다.”

요즘 ‘현모양처’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8일 제주도에서 열린 ‘2010여기자 포럼’에서 했다는 바로 문제의 발언록 중 일부이다. 최 위원장은 이 발언이 논란을 빚자 21일 “저의 발언이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여성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가 사과한 것으로 사안이 쉽게 일단락될 것 같지는 않다. 최 위원장이 ‘현모양처’라고 소개한 자신의 딸이 이번 6·2지방 선거 때 서울시 의원으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활동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과는 달리 자신의 딸이 정치 일선에 나선 사실은 모양이 썩 아름답지만은 않다. 이른바 여성의 활동에 대한 그의 이중잣대를 보여준 것이다.

현모양처론은 가부장제적 유교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한 사회적 억압의 한 형태라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돼버린 오늘날에 최 위원장의 이 같은 전근대적 여성관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대세가 돼버린 요즘에도 그가 이 같은 생각을 지녔다는 점은 더욱이나 한심하기 그지없다. 물론 칠순이 넘은 그의 연배로 미루어보면 그의 현모양처론을 다소나마 이해해줄 만하지만 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사회활동에 나서는 것은 보편적 흐름이 된 지 오래다. 이는 통계를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여성관련 통계를 보면 한국사회가 이제 남성중심사회에서 남녀균점사회로 변화해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문·기술·행정관리직에 종사하는 여성은 매년 증가추세를 보여 2008년에는 19.8%에 달했다. 여성의 대학진학율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다 올 들어서는 진학률이 82.4%로, 남학생의 81.6%를 앞질렀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처음으로 남성을 넘어선 것이다. 여성 국회의원의 수도 급증 추세다. 18대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의 비율은 13.7%로 증가했다. 이는 16대와 17대와 비교해 각각 7.8%p, 0.7%p 증가한 수치다. 공직 채용에서도 여풍 현상은 대세를 이룬다. 외무고시와 행정고시에서 여성이 과반수를 넘어선 지는 오래다. 외무고시의 경우 2008년에 여성합격자 비율이 65.7%였으며 행정고시의 경우에도 51.2%를 기록했다. 다만 사법고시는 여전히 남초현상이 유지되고 있으나 그 격차도 점차 줄고 있다. 사법고시의 경우 지난해 여성합격률은 38%에 달했다.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에 따르면 필기시험만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할 경우 여성이 과반수를 넘길 수밖에 없어 면접을 통해 성별균형을 맞추기도 한다고 한다. 필자가 과거 몸담았던 신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정원의 4배 정도를 필기시험으로 1차 합격자를 선발하는데 거의 70% 이상이 여성일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육체적으로 힘든 언론의 취재환경을 감안하면 여기자가 더 많을 경우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일부러 논술 등 면접과정에서 성별을 조절하곤 했었다. 결국 면접과정에서 여성이 불이익을 당하는 셈이다.

언론인 출신인 최 위원장이 이 같은 트렌드를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다른 자리도 아닌 여기자들의 초청 모임에서 현모양처론을 편 데 대해 단순한 실언으로 여기기에는 무언가 석연찮은 점이 있다. 정치권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친이명박주의자로 평가받는 그가 현모양처론을 설파한 이면에 혹시라도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사실상 선언한 한명숙 전 총리나 차기 대권가도에서 가장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기우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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