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일제침략 미화" 맞서..양국 학계 정면 대립
근.현대사 시각차 현격..고대사는 부분 동의

(서울=연합뉴스) 한.일 양국의 역사학자들이 한.일 강제병합 조치의 전단계인 을사조약(제2차 한일협약)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 정면으로 의견대립을 보였던 것으로 23일 드러났다.

특히 일본측은 을사조약이 당시 고종황제의 주도하에 진행됐다는 주장까지 펴 올해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과거사를 직시하려는 양국 조야의 노력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조광 위원장은 이날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최종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측은 을사조약이 국가를 가산(家産)으로 간주하고 황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던 고종 황제에 의해 주도됐다고 강변했다.

하라다 다마키(原田環) 현립 히로시마대 교수는 "고종황제는 국민과 일체가 돼 을사조약에 반대했다고 평가돼왔으나 사실과 다르다"며 "고종 황제는 한국 황실의 이익 보증을 일본에 요구하며 (조약을) 교섭했고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면 조약반대운동을 선동했다"고 강변하고 "특히 905년 11월17일 어전회의에서 당시 대신들은 조약체결의 거부를 주장했으나 고종황제는 '협상타판'(교섭타협)의 노선에 따라 협약안을 수정시켰고 그에 따라 2차 한일협약이 체결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일제의 한국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려는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일본 학자들은 청일전쟁으로 인해 비로소 조선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얻은 것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을 버거운 상대였던 청으로부터 분리하여 침략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었다"고 지적하고 "일제의 조선 침략을 미화하는 방편"이라고 비판했다.

한.일 역사학자들은 또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징용 및 강제공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식민지근대화론 등 근.현대사의 쟁점을 놓고는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내 각자의 주장을 보고서에 그대로 병기했다.

특히 이석우 인하대 부교수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독도의 법적지위가 언급되지 않은데 대해 "해당 영토에 대한 이해관계 국가들의 역사적 권리에 대한 고려보다는 전승국의 정무적인 편의성이 더 고려됐다"고 지적했고,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준교수는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에 대해 "교섭과정을 보면 한국이 '하잘 것 없는 것'을 요구하고 일본이 안이하게 승낙한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한.일 강제병합의 불법성과 독도 영유권 문제, 군대위안부 문제 등은 민감한 현안들이 공식 의제에서 제외됐다.

양측은 그러나 임나일본부설 등 과거사의 일부 쟁점에 대해 이견일치를 이끌어냈다.

한일 학자들은 지난 4세기에서 6세기까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부 일본 교과서 내용과 관련, 일본의 야마토 정권 세력이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했을 수 있지만 임나일본부라는 공식 본부를 설치해 지배활동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양측은 또 조선을 침략했던 왜구에 조선인이 포함됐다는 일본측 교과서 기술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왜구는 이키, 쓰시마, 마쓰우라의 해민(海民)과 영주가 중심이 된 해적집단이라는 사실에도 동의했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보고서가 과거사의 일부 쟁점에 대해 동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양국 역사인식의 공감대를 확대하는 평가를 얻었으나 근.현대사의 핵심쟁점들을 비켜감으로써 과거사를 냉철하게 직시하는데는 미흡했다고 평가하는 시각들이 나오고 있다.

한.일 양국은 이번 보고서 출간에 따른 양국 내부의 여론향배와 평가작업 등을 봐가며 제3기 공동위 출범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고대사(고대 한일관계 성립, 고대 왕권의 성장과 한일관계 등) ▲중근세사(14~15세기 동아시아 해역세계와 한일관계, 동아시아 세계와 임진왜란 등) ▲근현대사(한일 근대국민국가 수립과정과 한일관계 등)에 걸쳐 24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총 4천여쪽(7권)에 달한다.

2002년 3월부터 2005년 5월까지 활동한 1기에 이어 양국 정상의 합의로 2007년 6월 일본 도쿄에서 출범한 2기 위원회는 지난해 11월까지 가동돼 한일 합동 전체회의 5차례, 분과별 합동회의 62차례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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