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임태경 기자]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하기로 결정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 경제상황을 이같이 진단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트럼프 리스크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통화정책을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은의 통화정책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

이 총재는 “국내외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요인이 발생해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며 “불안 요인이 오랫동안 지속하면 경제 심리를 위축시키고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여 전반적인 성장세에도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것처럼 국내 정치상황을 정확히 예단하기 어렵고, 미국의 차기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많다”며 “지난달 (경제) 전망 이후 부정적 영향을 줄 만한 불확실성이 많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종잡을 수 없는 경제정책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앞으로 우리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기에 통화당국도 ‘혼돈’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향후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 방향에 대한 고민 역시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트럼프의 대선 공약이 실현될 경우 세계 교역은 물론, 국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자의 공약들을 보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 철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논의, 비관세 장벽을 실현하는 안을 많이 담고 있다”며 “만약 이러한 공약들이 정책으로 실현된다면 세계교역은 물론, 국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반기 들어 우리 경제는 심상치 않은 돌발 악재들이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지지부진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생산중단, 현대자동차 파업, 경남지역 지진·태풍까지 맞물리면서 그야말로 사방에서 난타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대한민국을 패닉상태에 빠뜨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경제계 곳곳을 마비시키고 있고, 미국 대선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앞으로 세워질 트럼프 행정부의 맞춘 경제정책을 새로 짜야 할 판이다.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꺾이지 않는 가계부채는 여전히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해 발목을 잡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성장경로 전망도 한층 불투명해졌다. 한은은 한 달 전만 해도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2.7%와 2.8%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바라봤지만 분위기는 급변했다.

지난달 이주열 한은 총재와 전승철 한은 부총재보도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이 2000년대 초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2%대로 떨어졌음을 시사했다. 민간경제연구소들에 이어 통화당국 수장도 경제의 기초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음을 시사하면서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터널에 갇힌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를 최대한 사용해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의미한다.

LG경제연구원은 생산성 저하 추세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잠재성장률이 2016∼2020년 연평균 2.5% 수준에 머물고, 2020년대에는 1%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11일 내놓은 ‘2017 경제전망’에서 “한국경제가 대외수요 부진 및 보호주의 확산으로 수출 회복이 지연되고 내수 정체도 지속돼 내년 성장률이 2.4%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정부 전망치(3.0%)보다 0.6%p나 낮은 수치이며, 한은의 전망치와도 격차가 크다. 

연구원은 대내외 수요 부진, 판매가격 정체, 부실산업 구조조정 여파 등으로 내년 국내 기업들의 업황이 본격적으로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고, 기업들은 재무건전성 확보 등 안정성 개선 노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 금통위원들도 최근 대내외 현상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은이 11일 내놓은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을 보면 금통위 위원들은 국내 경제상황에 대해서 “수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내수는 개선 움직임이 약화되고 있다”며 “최근 대내외 여건 변화로 성장 경로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며 “이 과정에서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과 그 영향, 미 연준의 통화정책 변화, 가계부채 증가세 등을 면밀히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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