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으로 읽는 한국문화’ 저자 박한나

어느 미국인 영어강사가 한국어를 막 배웠다. 가게에 가서도 어눌한 발음으로 더듬거리며 한국말로 주문했다.

“햄 샌드위치 한 개 주세요.”

“원 오아 투?”라며 한국인 점원이 영어로 묻는다. 그 영어강사는 계속 한국말로 하고 한국 사람은 끝내 땡큐로 마무리한다. 돌아서며 그 미국인은 “한국말 배우고 싶어요! 한국 사람들은 왜 내게 영어로만 말해요?” 한다.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워 이런저런 궁색한 말을 늘어놓았더니 그동안 한국 사람들한테 정말 이상한 것이 있었다며 물었다. ‘헤어질 때 전화하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안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런 말로 실망했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단다. 그것은 마치 ‘다음에 밥 한번 먹어’ 하며 헤어지는 것처럼 한국인의 다양한 인사 표현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말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말을 담고 있는 문화임을 공감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의 오랜 영어강사 생활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느낀 점은 ‘영어만 배우려 하고 그 문화를 알려고 하지 않아서 한국인이 영어에 쏟아 붓는 열의만큼 별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렇다! 어느 나라 말을 배우든지 그 나라의 문화를 아는 것은 그 나라 언어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고 조금 배워도 많이 활용하게 하는 효율적인 외국어교육법이 된다.

최근 국내에서도 한국어 교육은 매우 활발하다. 국제 결혼한 다문화가족, 국내 체류 외국인들 그리고 해외의 700만 동포와 그 자녀들, 세계 어디나 나가 있는 한국 기업체에 근무하는 외국인 등 국내외에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층은 매우 두터워졌다. 이는 지난 2000년 초 무렵, ‘한류’가 중국에서부터 동남아로 퍼지면서 한국어 교육에 대한 눈을 뜨게 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글의 우수성은 한류 이전에 이미 세계가 유네스코 문화재로 만들어 인정했음에도, 우리는 열강들의 외국어를 배우는 데 평생의 에너지를 소비하여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 것을 가르치는 데는 익숙하지(?) 않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정부와 언론에서 더욱 외국어를 남용하고 있어서 외국에서 시작된 한국어 수요의 물결을 성숙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책만 들고 파서 어려운 영어단어는 잘 알고 있어도 외국인과 대화하다 보면 문화를 몰라 당황한 나머지 잘 외운 영어를 말하지 못하듯이, 한국어를 가르칠 때도 어려운 어법만 가르치고 문화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한국어의 매력을 느끼기도 전에 ‘한국어는 어렵다’는 인상만 심어주게 되어 한국어 초급반만 무성해지게 만들 수 있다.

이제 신학기다. 외국인에게 한국어 교육을 하는 자세부터 점검해보자.

한국어 강사들이 먼저 우리 조상들의 문화와 그에 스며있는 지혜를 알아야 하며 그런 자긍심을 바탕으로 강단에 서야 할 것이다. 개인이나 나라나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이 없듯이 한국역사의 부정적인 측면을 마치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인 양 외국인에게 늘어놓는 강사를 보면 한국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외국인만 보면 영어로 친절을 다해주고 싶어 영어로 가능한 말하면서 교재에 나와 있는 한국말만 가르치면 백날 한국어 교육도 초급에서 끝나는 것이다.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철저히 한국말로 인사하고 출석체크하면서 한국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과 억양에서 묻어나오는 분위기를 익히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한국문화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노랫말을 시로 읽게만 할 것이 아니라 노래를 한 가닥 뽑아봄으로써 노래를 어느 때나 즐겨하는 한국인의 기질을 느끼게 하여 한국에 노래방이 왜 많은지 알게 한다. 자연스럽게 한국문화에 매력을 느끼면 가요 상품과 관광을 그리고 한국어 고급을 끝내고 한국과 관련된 가교역할을 할 수도 있게 된다.

특히 사회실용적인 면에서도 한국어에 있어서 문화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해야 한다. 근래 국제결혼의 다문화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이혼율도 급증하고 있다. 대부분 언어보다 한국문화를 몰라서 오는 부부갈등이 더 심하다는 것이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의 한국여성 인권 유린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들은 한국문화의 아주 초보적인 것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 들어와 사는 외국인 앞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한국어만 알려줄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한국문화를 알려줌이 필요하다. 그런 모습을 보여줄 때,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어의 진보뿐만 아니라 한국에 잘 적응하게 만들어 사회의 범법적인 요소도 제거해주게 되므로 한국이라는 국가브랜드를 높이는 역할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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