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림정거도. (사진:학고재)
500년 만에 조선땅 밟은 서화 30점

[뉴스천지=서영은 기자] 500년의 긴 세월, 오랜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조선의 그림 30점을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서울 소격동 갤러리 학고재에서 오는 10일부터 내달 25일까지 ‘500년 만의 귀향, 일본에서 돌아온 조선그림’ 展을 연다. 전시된 그림은 일본에 전래해 오던 작품 중 고사도(故事圖)와 준마(駿馬), 맹호(猛虎), 영모(翎毛)ㆍ서수(瑞獸) 등의 동물화를 중심으로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회화 30점이다. 대부분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으로 더욱 눈길을 모은다.

2009년 말 기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 외국에 있는 한국 문화재의 수는 18개국 10만 7857점에 달했다. 그중 60%인 6만 1000여 점이 일본에 있다.

우리 문화재의 일본 반출은 아주 오래 전 삼국시대 이전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사신왕래, 문화교류, 수집활동 등 많은 경로를 통해 다양하게 이뤄졌다. 또, 왜구의 침범과 일제강점기의 약탈을 통해 우리 문화재들은 수없이 많이 일본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이는 일본이 한국 문화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아시아 각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한류 바람의 진원지 역시 일본이었다는 사실에서 보면 그들의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조선회화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에도시대(강호시대) 서화에 영향을 받은 일본은 조선 통신사들이 방문하면 작품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며 “조선의 회화가 한류의 원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이번에 돌아온 조선의 그림이 500년이 지났는데도 전통적 표장형식 그대로 잘 보존됐고 그곳에 직접 제작과 수장 기록이 남겨지기도 했다. 이는 일본문화에서 배워야 할 장점”이라고 말했다.

전시된 출품작 중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사례는 천보 계사년(天保 癸巳年, 1833)에 족자를 꾸며 수장했던 달천(達川)의 <풍림정거도(風林停車圖)>다. 이 연대로만 치더라도 일본에서 수장 기간이 상당히 긴데 180년 만에 고향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또 명치 20년(明治二十年, 1887) 71세의 남무암(南無庵) 문기(文器)가 소장내력을 자세히 밝혀놓은 김유근(金逌根)의 <소림단학도(踈林短壑圖)>, 소화7년(昭和七年, 1932)에 상연거사(相然居士) 화선(華仙)이 감식했던 작가미상의<송파휴금도(松坡携琴圖)>, 금강봉사 강덕원(金剛峯寺 康德院) 조공(照空)이 수장했던 작가미상의 <누각산수도(樓閣山水圖)> 등이 있다.

이들을 포함해 조선 말기 석연 양기훈(石然 楊基薰, 1843~?),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 일재 김윤보(一齋 金允輔, 1865~?) 등의 영모화(翎毛畵)까지 총 30여 점이 출품된다.

이번 전시에서 10점이 출품된 고사도(故事圖)는 이상화 된 세계나 이상적인 인간상을 염두에 둔 소재로 주로 중국 역사를 원전(原典)으로 하고 있는 조선시대 그림이다. 이에 대해 일본 상류사회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회화는 초기부터 중국의 고사와 관련된 그림이 많다. 회화적 소재부터 표현 방식까지 조선시대 문화와 예술이 그러하듯 중국에 빗대는 일이 생활 속에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동물화는 준마(駿馬), 맹호(猛虎), 영모ㆍ서수(翎毛ㆍ瑞獸)를 담은 회화작품으로 상서로움을 추구한 무속적 속성과 무관하지 않은 소재들이다. 또한 앞서 고사도와 같이 이들 동물화 역시 중국의 고사와 연계되는 것이 많은데 이것을 통해 한중일 동아시아 지역이 유사한 민속신앙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중일 삼국은 그 동물이 상징하는 점까지 대부분 일치하는 유사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준마는 4점, 맹호 5점, 영모·서수 11점이 전시됐다.

이번 ‘500년 만의 귀향, 일본에서 돌아온 조선그림’ 展에 출품된 그림들은 일본에서 한국 미술품 개인수집가로 유명한 유현재(幽玄齋) 컬렉션의 일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옛 사람들의 문화교류에 대한 이해는 물론 현존하는 자료가 많지 않은 조선 전기 회화사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0일, 500여 년의 유랑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우리의 그림을 통해 부드러운 외교 수단이 되기도 했던 우리 문화유산을 다시 한 번 새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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