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

 

소비자가 보험에 가입하는 목적은 보험약관에 정한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보험사고 발생으로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가 보험금을 주기는커녕 갑자기 해괴한 짓을 해서 소비자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험금 화해신청서’와 ‘채무부존재소송’이다.

‘보험금 화해신청서’는 청구한 보험금 중 삭감된 일부 금액으로 화해를 신청한다는 내용의 서류로, 보험가입자가 자발적으로 작성해서 보험사에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험사가 신청서 양식과 예시문을 가입자에게 보낸 후 작성, 제출하도록 종용하고 겁박을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보험사가 보낸 화해신청서 예시문은 “보험금 000만원 중 000만원을 화해금으로 수령하고 (지연이자 없음) 보험금 청구에 갈음하며, 향후 민·형사상 소송 등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어길 경우 지급받은 화해금을 반환할 것을 확약합니다. 화해신청인은 보험약관 등 제반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라 자필로 화해를 신청합니다”라고 기재돼 있다. 또 “상기 예시문을 똑같이 옮겨 적으시면 됩니다”라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만약 보험을 잘 모르는 가입자가 보험사의 상기 예시문대로 화해신청서를 작성해서 보험사에 보내면 멀쩡하게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을 일순간에 도둑맞을 수 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화해신청서를 섣불리 작성해서 손해 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보험사의 ‘채무부존재소송’도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사례다.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지급할 보험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법원에 청구하는 것을 ‘채무부존재소송’이라 하는데, 보험사들이 가입자에게 지급할 보험금을 거절하거나 삭감 지급하려고 의도적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법원에서 등기우편물이 날라와 깜짝 놀란다. 겁을 잔뜩 먹고 뜯어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소장이고, 보험사가 나에게 보험금 지급 책임이 없다는 내용으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소송의 소자도 모르는 가입자는 당황해서 애를 태우고 있는데, 며칠 후 보험사가 보낸 손해사정사란 사람이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만나본다. 소송 얘기를 꺼내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큰코다칠 거라며 겁을 주고는 조용하게 이렇게 하면 탈 없이 소를 취하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상대방은 전문가이고 가입자는 문외한이므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가입자는 받아야 할 보험금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는 것이다.

보험약관에 기재되어 있듯이 보험사의 주된 의무는 보험금 지급이다. 그런데 보험사들이 사정이 어렵다고 보험금 지급을 부당하게 거절하거나 삭감 지급해서 가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되고, 그 중심에 화해신청서와 채무부존재소송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가 주된 의무를 위반하며 가입자의 보험금을 부당하게 편취하는 것은 불법이고 ‘보험사 사기’다. 보험사의 보험금 부당 편취는 소비자의 권리를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근절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먼저 깨어야 한다. 멀쩡하게 앉아서 당하지 말고 부당함을 강력히 주장하고 당당하게 따져서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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