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대 수입규제 179건
美, 韓 철강·가전 잇단 규제
한 달 사이 덤핑 판정만 4번
대선 후보들 무역협정 재검토
사드 배치 새로운 뇌관 부상
中, 비관세 장벽으로 韓 압박 

[천지일보=임태경 기자]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한국 수출 전선에 또다시 암운이 드리워졌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EU와 신흥국까지 대(對)한국 무역 규제를 쏟아내면서 국내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한국 제품에 잇단 관세 폭탄을 매기고 있고, 한반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따라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도 가시화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EU와 신흥국의 견제까지 받는 상황이 이어지자 수출기업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

경기침체 장기화로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을 강화하면서 한국에 대한 수입규제 건수가 179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에 대해 수입규제를 한 나라가 31개국, 수입규제 건수는 179건으로 집계됐다. 현재 규제 중인 것이 132건이고, 47건은 조사 중이다.

보호무역 장벽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국까지 확산되면서 한국 경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산 제품에 대해 수입규제를 많이 하는 나라 중 인도,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이 상위 10위 안에 7개 국가나 포진해 있다.

한국은 수출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이다. 이에 전 세계적 보호무역 흐름이 길어질수록 우리 경제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 (출처: 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우리나라 주요 수출업종 15개 가운데 10군데가 글로벌 보호주의 확산으로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영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이들 업종이 직면하고 있는 보호주의를 유형별로 보면 미국·EU 등 선진국에서는 중국의 저가수출에 대응해 반덤핑 등 수입규제 조치 시행, 중국에서는 까다로운 각종 비관세장벽 설정으로 외국 기업의 시장접근을 실질적으로 제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자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의도적 수입규제와 시스템 미비로 인한 통상애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보호무역주의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재계는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 대선 과정에서 FTA 재협상, 환율 조작국 지정 등 더 강도 높은 조치들이 제시되고 있고, 연말로 예상된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부여를 놓고 미국의 반대와 EU(유럽연합)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본부장은 “통상마찰은 일단 발생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 측면에서 많은 나라와 FTA를 체결해 두는 게 도움이 된다”며 “TPP 등 무역자유화 조치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출처: 연합뉴스)

◆美, 한 달간 한국 제품에 4번의 관세 폭탄

특히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한층 거세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 제품이 최근 한 달 사이 미국으로부터 4번의 관세 폭탄을 맞았다.

미국의 관세 폭탄 투하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정용 세탁기에 각각 111%, 49%의 반덤핑 예비 판정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곧바로 다음 날 한국산 내부식성 철강제품과 냉연간판에도 반덤핑 관세를 부과키로 했다. 그리고 지난 5일에는 한국산 열연강판에 대해 최대 61%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매겼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한국산 철강에 60%가 넘는 관세를 부과했다는 것은 사실상 미국이 한국의 철강 수출 길을 막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관세 장벽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이 보호무역을 정강으로 채택하는 등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맞물리면서 심화하고 있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은 자국의 경제 상황을 의식해 자유무역협정(FTA)과 다자간 자유무역협정(TPP) 등 기존 무역협정 대해 재검토할 것을 시사했다. 특히 트럼프는 한미 FTA가 많은 미국인 노동자에게 피해를 끼친 ‘일자리 킬러’라며 연일 ‘한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대선이 끝나더라도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경기 회복이 지체되는 상황에서 한미 통상마찰이 심화될 경우 한국 수출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 (출처: 연합뉴스)

◆中, 비관세 장벽으로 韓 압박

한반도 사드 배치는 수출 전선에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드 배치로 심기가 불편해진 중국이 관영 매체를 통해 공세 수위를 날로 높여 가고 있는 가운데 경제 보복으로 의심되는 신호도 곳곳에서 잡히고 있다.

통관을 지연하거나 비자 발급에 대한 법적절차를 강화하는 등 겉으로 보이지 않는 비관세 장벽을 활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 3일 중국 당국은 한국인을 상대로 상용 비자발급을 대행한 업체에 대해 자격정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선상비자(도착비자)의 체류 가능 일수마저 30일에서 7일로 대폭 줄였다. 중국은 다른 국가와 정치·외교적 갈등을 겪을 경우 비자정책을 까다롭게 해왔다는 점에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일들이 정치·외교적 대립으로 인한 현상이 아니라 중국이 무역 장벽을 높여 가고 있음을 뜻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경기 둔화로 성장률과 제조업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중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수출품에 대한 중국의 반덤핑 조치는 2000~2008년 46건에서 2009~2015년 8건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위생·검역은 249건에서 887건으로 크게 늘었다. 기술장벽 건수도 507건에서 681건으로 증가했다. 산업별로 볼 때 농·축·수산물뿐만 아니라 전기·전자 부문의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통관 거부도 늘어나는 양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중 FTA를 적극 활용해 중국의 대(對) 한국 비관세장벽 등 보호무역 조치에 대한 중장기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업들 자체적으로도 중국의 무역정책 및 관련 법제도에 대한 사전 검토와 현지 기업과의 네트워크 및 파트너십 강화 등으로 보호무역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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