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왜 한 번 오르면 내려올 줄을 모르냐고, 아니 등록금이 무슨 우리 아빠 혈압이야?”

급등하는 대학등록금을 풍자한 이 한마디로 대박을 터뜨린 개그맨 장동혁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KBS-2TV <개그콘서트>의 ‘봉숭아 학당’ 코너에서 ‘동혁이 형’으로 등장해 호통치는 장동혁의 한마디 한마디가 최대 화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장동혁은 이날 프로그램에서 “옛날엔 우리 아버지들이 소 팔아서 등록금을 댔지만 지금은 소 팔아선 턱도 없다”며 “왜 아버지들이 등록금 대려고 죽을 때까지 소처럼 일해야 되냐고. 우리 아빠가 무슨 워낭소리야?”라고 등록금 인상을 꼬집었다. 장동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학자금 상환제도, 등록금이 비싸니까 돈을 꿔줄 테니 졸업하고 취업하면 돈을 갚으라고? 그럼 취업 안하면 안 갚아도 되는 거니? 내가 만약에 돈 못 갚으면 나 잡으러 쫓아다닐 거야?”라고 학자금 대출제도의 문제점도 도마에 올렸다. 코미디 프로에서 정부 정책을 정면으로 문제 삼은 것은 개그맨 김제동 퇴출사건 등으로 가뜩이나 얼어붙은 요즘 방송가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장동혁의 시원한 입담은 그 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2월 7일 방송된 프로에서 “몇 천억 원이 애들 이름이냐”며 “이젠 시청하나 짓는데 몇 천 억은 기본이라더라”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호화청사 건축 붐을 질타했다. 그는 “대리석 바닥에 에스컬레이터까지 웅장하더라”며 “거기가 무슨 베르사이유 궁전이냐”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이어 “어떤 시는 100층짜리 복합시청을 짓는다더라”며 “거기가 두바이냐”고 힐난했다.
장동혁처럼 사회풍자적 블랙코미디언이 화제를 모으는 현상이 새로운 것 같지만 실은 20여 년 전에 더 인기가 있었다. 정치·사회현상을 예리하게 패러디한 블랙코미디는 정작 권위주의시대에 더 성행했던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탠딩 코미디의 거장 김형곤과 요즘 다시 뜨고 있는 최양락이 바로 그 프로의 주인공들이다.

김형곤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87년 KBS-2TV <유머일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에서였다. 우리 방송사상 시사코미디의 원조라 할 이 프로에서 그는 ‘비룡그룹’의 가부장제적 7순 회장으로 등장해서 아부와 모함이 판치는 출세지향적인 세태를 조롱했다. 특히 이 프로는 매주마다 가장 화제를 모은 사건을 소재로 삼아 진정한 의미의 시사코미디를 선보였는데 암담한 6공화국 시절에 민초들은 이 프로를 보면서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었다. 그의 세태풍자 개그는 이어 ‘탱자 가라사대’ 코너로 이어지면서 완숙도를 더해갔다.

최양락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또 하나의 풍자 개그맨이었다. 그는 역시 KBS <쇼 비디오자키>프로그램의 ‘네로 25시’ 코너에서 고대 로마시대의 네로왕 역을 맡아 기가 막히게 시대를 주름잡았다. 이 프로에서 최양락은 폭군 네로의 이미지를 십분 활용하여 웃기지도 않은 법률을 제정하거나, 자기 기분대로 국정을 농단하는 독재자 역을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그런데 이 같은 정치풍자극이 가능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노태우 전 대통령 덕분이었다. 6·29선언 이후 집권한 노 대통령이 유화적 제스처로 “나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사회풍자 개그가 성행했고 코미디프로 전성시대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민주화시대 이후에는 풍자개그가 점차 방송에서 사라져 갔다. 관계자들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아슬아슬한 긴장도가 감퇴한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이참에 새롭게 풍자개그가 등장했으니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모처럼 등장한 풍자개그가 좀 더 장수했으면 싶다. 그런데 최근 사회분위기를 보건대 ‘동혁이 형’이 눈치없이 마구 설쳐대다가 ‘봉숭아학당’에서 퇴학당하지나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앞서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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