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초빙교수 이재무

요즈음은 그야말로 의심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이동통신사 상담원은 꼬박꼬박 전화한 사람이 본인인지 물어보고, 보험 광고는 알아듣기도 힘든 속도로 짧은 시간 동안 약관에 대해 역설하며, 은행에 가서 단순한 입출금 통장 하나를 만들 때도 온갖 입증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에 업무처리가 안되면 다시 처음부터 행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아무 문제도 없는 고객들의 경우 이러한 조치들이 보통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물론 해당 조치들은 소비자 권리를 온전히 보호하고 개인 신용이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함이라는 나름의 명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실 속내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와 같은 서비스 공급 기업들의 고객신용 보호를 위한 조치들이 과연 고객들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우선 고객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업체들의 태도는 고객들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제공한다.

거의 대부분의 고객들은 범죄와 무관한 사람들임에도 그들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더욱이 잠재적 범죄자가 아님을 입증하는 처리 과정에 필요한 서류도 업체마다 제각각이고, 사례에 대한 대응도 상이하다.

이동통신사가 보유한 신용정보와 금융기관이 보유한 신용정보의 가치가 서로 다르지 않을 텐데 두 기관에서의 보안조치는 크게 다르다. 또한 고객의 신용을 진심으로 보호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고객의 피해 파악과 그에 대한 긴급한 대응을 최우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 선례를 보면, 이동통신사도 금융회사도 모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신들이 취한 신용보호 조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들의 책임이 아님을 가장 먼저 강조한다. 이후 그에 대한 처리에도 비협조적이고 방관적이다.

일견 고객신용 보호를 위한 조치들로 인해 관련 범죄가 어느 정도 감소했다는 주장은 타당하게 들린다. 그러나 고객신용을 악용하는 범죄가 근절되는 양상을 보인적도 없고, 경찰청 보이스피싱 범죄 발생통계를 보면 보이스피싱 피해 규모는 2007년 434억원에서 2015년 1070억원으로 오히려 급증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이 겪는 불편함에 비하면 업체들의 자칭 고객신용 보호 조치로 인한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객신용에 대한 보안 조치를 행할 것인가? 먼저 대다수의 고객들에게는 불편을 최소화하는 서비스 방침을 유동적으로 적용하여 편의를 극대화하는 이중 구조의 고객신용 보호체계의 마련이 요구된다.

그리고 원론적으로 당연히 업체 자체의 신용보안 체계를 엄격하게 구축해야 한다. 중국의 초보해커들이 연습을 위한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이 한국의 금융기업들이라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기업의 보안체계가 허술한데 그를 고객들에 대한 불편한 조치를 통해 보완하려는 행위는 무용하다.

그리고 신용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일 수 있도록 공공기관과 긴밀하게 협조할 필요가 있다. 첨단의 정보통신사회를 살고 있는 개개인에게 있어 개인 신용을 악용한 범죄 피해를 통해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릴 수도 있음을 감안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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