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 칼럼니스트
 

 

판소리에 입문하는 이들이 즐겨 부르는 소리 가운데 단가(短歌)가 있다. 단가는 전통적 국악의 한 장르로서 짧은 소리라는 뜻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4계를 허무한 인생에 비유하여 벗들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자는 노래다. 단가라고 하지만 짧지 않은 사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맨 나중 가사가 재미있다.

‘…늘어진 계수나무 끄끝터리에다 대랑 매달아 놓고 국곡투식하는 놈, 부모 불효하는 놈, 형제 화목 못하는 놈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아서 한잔 더 먹세, 들 먹게 하면서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세’

‘국곡투식’하는 놈이란 바로 부정부패하는 자를 가리킨다. ‘불효하는 자와 형제 화목을 깨는 자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버리자’는 대목은 자연을 읊은 단가치고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동초제 단가는 이런 부분을 개사하여 부르고 있다.

‘…노세 젊어 놀아 늙어지면은 못노나니라. 놀아도 너무 허망이 하면 늙어지면서 후회되리니 바쁠 때 일하고 한가할 때 틈타서 좋은 승지도 구경하며 할일을 하면서 놀아보세’

필자는 소리 전문가는 아니지만 단가 듣기를 좋아한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신라 향가의 잔영은 아닌지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다. 단가의 끝 부문에 나오는 살의마저 담긴 부정부패의 추방, 효제(孝悌)를 강조하는 내용을 음미해 보면 더욱 그렇다.

‘향가’는 젊은 화랑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였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향가는 천지귀신(天地鬼神)도 감동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뜻은 향가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노래였음을 알려준다. 신라사회 전반에 유행한 노래였지만 화랑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향가를 떼창했다.

화랑가운데는 향가를 매우 잘 부른 이들이 많았다. 진평왕 때 거열랑을 비롯한 세 화랑이 낭도들과 함께 풍악산으로 가려했는데 혜성이 나타나자 여행을 중지하려 했다. 이때 융천이 향가를 지어 부르자 별의 괴변이 사라졌다. 국왕은 기뻐하여 화랑도를 풍악산(금강산)으로 보냈다고 한다.

향가의 명인들이 대부분 화랑출신에서 나왔다. 신라 효소왕대 화랑 죽지랑을 사모하여 부른 득오의 ‘모죽지랑가’, 경덕왕대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등이 그렇다. 경덕왕은 사랑하는 누이가 죽자 향가에 능한 월명사를 불러 영전에서 향가를 부르게 했다. 가사내용은 인생의 허무함을 그린 것이며 왕은 사랑하는 누이를 사후에라도 반드시 만나기를 염원한다.

제과업체인 모회사 임직원 100명이 사철가를 떼창하여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국악을 좋아하는 이 회사 회장이 사철가를 임직원들에게 장려하고 이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후 북을 치고 단가를 함께 부른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전북에 주둔한 향토사단 장병들이 사철가를 떼창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100명 이상의 젊은 장병들이 사철가를 부르는 모습은 옛날 화랑들의 모습처럼 장관이었을 게다.

한국의 판소리는 이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민요 아리랑은 지금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열정적인 국악인들이 판소리의 세계화를 위해 서양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천재적인 음악가들이 명창과의 협연을 통해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리려고 하고 있다. 젊은 국악인이 주도하는 소리 한류가 서구를 달구고 있는 요즈음, ‘우리 국악의 현주소가 여기까지 와 있구나’하는 기쁨이 앞선다.

그런데 국악에 대한 한국 재벌기업들의 지원은 밑바닥이다. 의욕적인 연주회를 마련하여 협찬을 요청할 경우 국악분야는 외면한다고 한다. 서울의 명창들이 시골로 낙향하는 사례도 있다. 평생 아끼고 사랑했던 가야금마저 팔아 생계를 돌봐야 하는 국악인들마저 있다.

작고한 원로 국인인은 항상 ‘우리 것이 최고여~’라고 했다. 국악 한류 바람에 힘을 싣는 국가 정책과 재벌기업의 지원 활성화가 아쉬운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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