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수행하는 일은 목표에 맞춰 적정 기간 내 결정해야 하는 적시성(適時性)을 중요한 기본원칙으로 삼는다. 미래의 바람직한 상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시간에 쫓기다보면 충분한 대비가 부족하기 마련인데 요즘 정치계가 보여주는 늦장 결정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 국회의원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더니만 4.13총선을 앞두고서 각 정당의 후보자 결정마저 늦어져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또는 비례대표로 어떤 인물이 나오는지 모르는 깜깜이선거가 이어지고 있으며 후보자 등록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정당 후보자 결정이 끝나지 않고 있다.

선량(選良)이라고 칭하는 국회의원들이 4년 가까이 활동을 해왔지만 그들 스스로도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라 자평한 바 있고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때문에 20대 국회를 구성해야 할 정치계에서는 정치가 변해야 된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정당 지도부에서는 무엇보다 정치 쇄신에 주력해 신선하고 능력 있는 국민의 참 일꾼을 공천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막상 공천 뚜껑이 열려진 그 결과물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흉작이나 다름없으니 유권자를 무시한 오만한 공천이라는 시중여론이 많아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가 않다.

새누리당에서는 공천 기간 내내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간 알력이 빚어졌고,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친박계의 아성이 요란하더니만 공천 결과를 보면 ‘진박(眞朴) 마케팅’ 성적표가 예상보다 부진했다는 평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마지막까지 공천 내홍을 겪은 것은 마찬가지인 바, 김종인 대표가 전권을 거머쥐고 무너진 당 대표 역할을 잘하는 것 같더니만 비례대표 후보에 자신을 셀프 공천한 것이 화근이 돼 뒷말이 무성하고, 국민의당에서도 김종현 선거관리위원장이 끝까지 공천을 매듭짓지 못한 채 21일 중도 사퇴하고 말았다.

이번 공천자들의 면면을 봐도 참신한 정치신인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토록 정치쇄신을 외치고도 물갈이는커녕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현역의원 다수가 공천됐으니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세평(世評)이 나올 만하다. 그들이 다시 국회에 입성한다고 가정한다면 20대 국회의 활약상도 19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시민단체나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20대 국회는 19대보다 더한 암울함이 예상된다”는 말이 현실정치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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