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희 여사의 어머니가 만들어 준 버선본. 뒤꿈치에 덧댄 누런 종이로 버선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버선본에는 덕담도 적혀 있다. (자료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가족들의 ‘버선’을 만드는 일은 오로지 엄마의 몫이었다. ‘버선’은 지금의 양말과 같은 역할을 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최근호 웹진에는 친정엄마가 시집간 딸의 집에 와서 만들어놓고 간 버선본이 소개됐다. 이 버선본엔 딸의 행복을 바라는 친정엄마의 마음이 묻어나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 양반가에서 태어난 이석희 여사(1914년생)와 그의 어머니에 관한 얘기다.

이 여사는 99세였던 지난 2012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그의 어머니가 만든 버선본을 기증했다. 버선본은 버선을 만드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종이다. 이 여사의 어머니가 만든 버선본은 하얀 한지로 돼 있으며, 뒤꿈치 부분만 누런 종이로 덧대어져 있다. 이렇게 하면 버선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이는 시집간 딸이 가족의 버선을 만들 때 수고를 덜게 하기 위한 것으로 딸의 노고를 헤아린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갑인생 복본, 슈명장슈, 부여셕슝, 자손창셩.’

버선본엔 이 여사의 어머니가 직접 적은 덕담도 그대로 남아있다. 덕담에서 ‘갑인생 복본’이란 이 여사가 태어난 해인 ‘갑인년’과 버선본의 또 다른 말인 ‘복본’이란 말을 붙여 적은 것이다. ‘슈명장수’란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뜻이다. ‘부여셕슝’은 중국의 석숭이라는 사람처럼 부자가 되라는 뜻이며 ‘자손창셩’은 아이를 많이 낳아 화목하라는 뜻이다.

▲ 1946년 이석희 여사의 어머니가 친정에 잠깐 들렀다가 간 딸에게 쓴 편지 (자료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회충은 없어졌느냐. 비자가 특효약이긴 하나 독하니 먹지는 말아라. 대신 배에 헝겊이라도 대어서 바람 안 들도록 주의하거라.’

이는 이 여사가 공개한 어머니의 편지다. 편지에선 시집간 딸이지만 부모의 눈엔 여전히 아이 같아 진심 어린 조언을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편지는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6년에 어머니가 이 여사에게 쓴 편지다. 이 여사의 어머니는 편지에서 “아쉽게 떠나던 그 날, 비 내리는 중에도 잘 갔는지 염려가 되었는데 잘 갔다니 다행이다. 여독은 없는지, 오죽 고단했겠느냐”며 “갑작스레 만나서 긴히 대화나 보고 싶던 정도 나누지 못했는데 차는 어이 그리 빨리 가니. 창을 붙들고 보려고 해도 안 보이더라. 나중에 얼굴만 보았다. 너만 괜찮으면 좋다”고 딸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당시 이 여사는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친정에 잠깐 갔던 참이었다. 이 여사는 막내아들을 임신 중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편지에서 “먼 데 다니지 말고, 무엇이든지 이고 다니지 말아라. 배급 쌀도 돈 들여서라도 사람 불러 들게 해라”며 “허투루 듣지 말아라”고 당부했다.

박혜령 학예연구사는 웹진에서 “어느 한 구절 딸을 향한 걱정이 담기지 않은 부분이 없다”며 “요즘은 자녀에게 훨씬 더 많은 시간과 품을 들일 수 있는 환경이 됐지만 먹고 살기 바빴던 옛날엔 별것 해준 것 없이 잘 자라준 딸이 먼 곳으로 시집을 가면 엄마의 미안함과 애틋함은 오죽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목소리 듣고 싶을 때 전화를 걸거나 보고 싶다고 찾아가 만날 수도 없었던 그 시절에 몇 개의 글자로 딸을 걱정하고, 버선본 하나로 딸에게 보탬이 되어주려던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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