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유엔 안보리는 뉴욕 현지시간으로 2일(한국시간 3일 0시) 드디어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한 북한에 대해 폭넓고 강력한 제재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 후 56일 만이다. 유엔과 유엔 회원국들은 당초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북이 넘어서는 안 되는 ‘레드 라인(red line)’이 될 것이며 그럼에도 북의 도발이 이루어지면 즉시 강력한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공개 경고해왔다. 이에 비하면 이날 안보리의 제재안 채택은 우리를 노심초사하게 할 만큼 때가 지연된 조치다. 그만큼 제재안 통과를 서두르는 한국 미국과 달리 한발 빼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설득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 난산(難産)이었다. 특히 중국이 무척이나 애를 먹였다. ‘중국의 동의 없는 한반도 문제의 진전은 있을 수 없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애초에 그들에게 있었다면 그들은 넘치는 성공을 거두었다.

한반도 문제에서의 중국의 존재감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안보리의 대북제재안 채택에 동의하면서 마치 조건을 달 듯 한반도에 고고도미사일 방어망(THAAD)을 배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러시아까지 합세하고 나섰다. 이는 대북제재안의 실제 시행 과정에서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열쇠까지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그들 손에 쥐고 있으려는 치밀한 포석이며 어두운 복선(伏線)이다. 이것도 모자라 그들은 북과 비핵화 협상이 이루어질 때는 평화협정 논의와 병행해나가야 한다며 우리의 염장을 지르기까지 한다. 이것 역시 안보리 무대에서 제재안 통과에 동의해주는 것에 대한 단서(但書)인 듯이 말했다. 북이 핵실험을 감행한 날 우리의 국가 원수가 그들 카운터파트(counterpart)에 전화를 걸어 대화를 시도했으나 그들은 묵묵무답(默默無答)으로 일관해 뭔가 석연치 않고 긴가민가한 냄새를 풍겼다. 그들은 이날 우리에게 결코 쉽게 잊히지 않을 아픈 기억을 심어주었다.

이제 그렇게 흐릿하던 그들의 ‘의도’는 명백해졌다. 그들은 한반도에서의 외교 게임(game)을 우리와 하기보다는 G2의 입장에서 우월하게 미국과 ‘핑퐁(ping-pong)’식으로 주고받고 하려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한다는 것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동맹국에 오해를 살 만큼 공을 많이 들여온 것도 사실이지만 전략적 동반자 관계와 자유무역협정 체결, 그들이 주도한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참여 등으로 우리가 그들과의 ‘거리’를 너무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착시(錯視)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우리가 좀 더 국가적으로나 외교적으로 국민적으로 냉정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안보리의 대북 제재안이 나올 때까지 우리 외교는 국가 의지의 관철 면에서 역부족이었다. 제재안은 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루어진 흥정의 소산물(所産物)이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제재안의 성공적인 이행 여부에 관한 칼자루가 그들 손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방법은 없을지라도 우리를 제쳐두고 등 뒤에서 이루어지는 국익을 해치는 뒷공론만은 결단코 용납할 수 없음을 거듭 거듭 천명해두어야 한다. 주권 국가로서의 위엄과 자존심을 살릴 궁극적인 책임과 의무는 우리의 현재 ‘좌표’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자명하다.

안보리의 대북제재안은 누수(漏水)의 구멍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채택된 내용대로만이라도 제대로 시행된다면 북은 그로부터 오는 고통을 참아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북제재안 2270호’로 통과된 제재안은 처음으로 북한 정권의 통치기관들, 심지어 통치 자금을 총괄하는 ‘39호실’과 실세 인물들을 리스트에 올렸으며 북으로 들어가는 자금줄에 대한 전방위 봉쇄와 핵과 미사일개발에 쓰이는 물품 유입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90일 안에 유엔 회원국에서 영업하는 북한 은행 지점들은 모두 폐쇄된다. 뿐만 아니라 북한을 드나드는 모든 화물선에 대한 검색이 의무화되며 금지품목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항공기의 유엔 회원국 영공 통과 및 이착륙도 금지된다. 로켓 연료를 포함 대북 항공유의 판매와 공급은 물론 북한의 석탄 철광 수출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김정은의 북한 정권과 통치기구들과 실세인물들을 정조준한 이 같은 안보리의 제재안은 유엔 70년 역사에서 비군사적으로는 가장 강력한 제재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더구나 안보리의 제재안이 통과된 것과 동시에 미국은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식 금융제재를 뛰어넘는 ‘돈줄 조이기’의 강력한 별도의 양자 제재에 착수함으로써 대북 압박을 가중시켰다. 미국은 한 차례의 대북제재로 그치지 않고 북한에 고통을 주기에 충분한 만큼의 행정명령들을 계속 발표해나갈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미 의회 역시 오바마 행정부에 고강도 대북제재조치를 취해나갈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EU(유럽연합)도 안보리 제재와 별도의 대북제재에 착수할 것임을 공언한 상황이어서 중국과 러시아의 뒷문만 열리지 않는다면 북이 견디기 어려운 처지에 빠져들 수도 있음을 전망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북한이 쉽게 ‘압력’에 굴복하고 핵 의지를 포기할 것인가. 그들은 언제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은 ‘제재’ 속에서도 기막히게 숨통을 열며 살아왔다. 불리할 때는 질질 끄는 협상으로 어떤 때는 특유의 벼랑끝 전술로 핵 개발 의지와 노력을 숨긴 채 우리와 미국, 국제 사회를 기만해왔다. 지난 20여년을 이런 식으로 버티면서 결국은 4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대북제재가 실패를 거듭한 것은 제재 참가국간의 일치된 행동 결여와 그로 인한 제재 효력의 누수 및 지속성 결여에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번 역시 제재의 성패는 제재안 효력의 지속성 확보와 그를 위한 제재 참가국의 의지와 행동의 일관성에 달려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북한은 저들의 이 난국을 제재 참가국 간의 교란과 이간을 집요하게 꾀함으로써 제재가 이완되는 틈을 타 모면하려 할 것임은 결코 길게 설명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북의 이 같은 수작을 우리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봉쇄할 것이며 이 일에 미국 중국을 등 뒤에서 벌이는 강대국의 게임이 아니라 우리와 의기투합하는 길로 어떻게 이끌어내어 북의 비핵화를 이루어내느냐 하는 것이 우리 외교가 당면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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