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 칼럼니스트

 
런던 심포니, 빈, 베를린, 뉴욕 필하모닉은 세계 4대 오케스트라다. 이들 유서 깊은 명문 오케스트라는 전 세계를 돌며 연주회를 가져 음악애호가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국가의 자산일 뿐 아니라 명예요, 자부심이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한 음악자료를 보면 이탈리아 작곡가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의 오페라 ‘오르페오’가 초연된 시기로 보고 있다. 1607년 ‘오르페오’가 초연 됐을 때 연주자는 34명이었고 사용된 악기 종류는 14가지였다고 한다. 오늘날 100여명 이상이 출연하는 대형 오케스트라를 감안하면 금석지감이 있다.

그런데 동양의 오케스트라 역사는 서양을 앞지른다. 고대 중국의 당·송 시대나 우리나라 신라시대에도 집단적으로 연주하는 무리가 있었지만 중세 송대(宋代)에 와서 정연한 규모를 갖춘 악단으로 발전한 것 같다.

그러나 악보를 갖추고 관·현악을 합친 오케스트라를 완성한 것은 15세기 조선 세종대다. 역사적인 일을 완성한 이가 바로 난계(蘭溪) 박연(朴堧) 선생이다. 난계는 세종에게 상소하여 아악을 정리하고 이를 악보로 남기는 큰 업적을 이뤘다. 악보를 완성하여 장중한 오케스트라를 완성한 것은 서양보다 160여년이나 앞선다. 당시 연주단은 무려 4백명이 넘었다고 한다.

더구나 난계 선생은 산실 된 많은 악기를 복원하고 음률까지 완벽하게 잡아 연주토록 했다. 중국에서 사라진 전통 오케스트라를 다시 살려, 동양아악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 사라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인가. 특별히 세종실록에 악보를 수록토록 한 것은 세종과 박연 선생의 위대한 예술정신 때문이다. 만약 이 악보가 실록이 아니고 민간 저술로 전해 졌다면 현재 남아있을 수 있을까.

세종대왕이 승하한 후 아악이 소홀해지자 성종은 성현(成俔)을 시켜 악학궤범(樂學軌範)을 만들게 된다. 이는 실록에 남은 악보를 토대로 한 것이며 궁중의식에서 연주하는 아악(雅樂)과 당악(唐樂)·향악(鄕樂)에 관한 여러 사항을 그림으로 풀어 알기 쉽게 설명했다. 또한 편경·장고·나팔·아쟁 등 많은 악기를 세밀하게 그림으로 그려 놓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들의 음악과 악기를 소중히 여겨 자료를 집대성한 민족은 세계사에서 찾을 수 없다.

박연 선생이 살려낸 종묘제례악은 지난해 가을 파리에서 공연돼 관중들을 감동시켰다. 동양의 신비한 궁정음악과 군무(群舞)에 매료된 파리 예술가들은 원더플(Wonderful)을 연발했다고 한다. 종묘제례악은 런던 필하모닉처럼 새로운 한류로 세계에서 명성을 얻을 날이 머지않았다.

충북영동군 박세복 군수가 추진하고 있는 심천면 고당리 난계박연선생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 노력은 지역개발은 물론 한국국악의 세계화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일로 평가된다. 이 운동에는 추풍령이 고향인 이필우 충북협회장도 함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동의 효정신과 국악진흥운동을 지원해 온 이 회장은 국내·외 요로에 적극적인 외교 노력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연 선생이 출생한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는 영정을 모신 사당을 비롯, 묘소와 유서 깊은 효자비, 세덕사등 사적이 남아있다. 그리고 국악기제작소, 난계국악당, 국악체험장 등이 자리 잡고 있어 국악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50년 역사를 지닌 난계예술제는 전국 제일의 국악축제로 정착했으며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아악과 난계 박연 선생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국악계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영동군의 노력에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따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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