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19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달 13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추계 정기총회 본회의를 갖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천주교주교회의 처음으로 반대 성명
“보조성 원리·민주주의 원칙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사회뿐 아니라 종교계에도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천주교를 대표하는 기구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간 진보 성향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끊임없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냈으나 염수정 추기경, 김희중 대주교 등이 포함돼 있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종단 차원에서 반대 목소리를 낸 건 처음이다.

개신교에서는 여전히 보수성향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대표회장 양병희) 등은 국정화 지지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진보성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장 최부옥) 등은 국정화에 반대하며 계속해서 대립을 하고 있다.

한국종교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천주교가 종단 차원에서 반대 목소리에 가세하면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둘러싼 대립이 향후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주교회의 참여에 큰 파장 예상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보수와 진보성향을 띤 종교단체들이 각각 찬반의 입장으로 몇 달간 대립해온 가운데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침묵을 깨고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김희중 대주교)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지난 19일 성명서를 발표해 “그간 역사학계와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제기한 비판적인 논의나 국민 과반수이상이 반대한다는 여러 여론조사 결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합리적 견해를 무시한 채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발표하고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수와 진보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웬만해선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던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서는 공식입장을 내자 종교계가 술렁이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염수정 추기경, 김희중 대주교 등 39명의 한국천주교를 대표하는 이들로 구성된 단체라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종단 차원의 입장인 셈이다.

진보 성향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계속해서 반대 입장을 표명해오다 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시국기도회를 열고 더욱 강한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며칠 만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국정화 반대 움직임에 가세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그간 정의구현사제단의 극단적인 진보성향 행동에도 웬만해선 동참하지 않던 주교회의가 이번 국정화 반대에는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큰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만드는 일 없어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사회적 관심’ 1항에 보면 인간의 참다운 발전과 인간의 모든 차원을 존중하고 신장시키는 사회로 발전하기를 원하는 교회의 사회적 관심에 따라 현재 전개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에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현시점에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을 통해 교과서를 독점하겠다는 것은 가톨릭 사회교리가 근간으로 제시하는 보조성의 원리 및 민주주의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한국사 교과서를 정부가 발행하고 보급하겠다는 사고 자체가 한국사의 흐름 속에 이미 사라져간 권위주의 시절의 사고와 맞닿아있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위원회는 “글로벌 시대를 주도하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 한국사회의 문화적·학문적 수준이 한국사 교과서를 자율적으로 제작할 수 없을 만큼 낮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위원회는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국민들을 향해 ‘종북’또는 ‘좌파’라는 이념적인 공격을 멈추고 시민의 정당한 참여를 장려하고 민주주의 절차를 지킬 것”을 주문했다. 또한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정책을 거두고 원점에서부터 새롭게 논의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개신교 단체들 찬반 양립 팽팽

한편 개신교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대표회장 양병희), 한국교회언론회(대표회장 유만석),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 회장 황수원),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총회장 유동선) 등은 국정화 지지를 하고 있으며, 반대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장 최부옥) 등은 국정화에 반대하며 계속해서 대립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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