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작가 최인호 씨가 암투병중이다. 청천벽력 같은 이 소식을 듣고 1950년대 출신 세대 중 한번쯤 “아! 그도 벌써 그 나이가 됐나”라며 상념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그 시대의 지진아거나 북한에서 온 새터민일 것이다. 그만큼 그는 그 세대 청춘의 아이콘이자 요즘말로 ‘아이돌 스타’ 그 이상이었다.

청바지와 통기타로 상징되는 저 제3공화국 시절의 청춘들에게 음악에서는 <트윈 폴리오>와 이장희, 장현, 신중현이, 소설과 영화에선 최인호와 이장호, 하길종이 우리의 우상이었다. 최인호가 까까머리 서울고 2학년 시절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나 신문사에서 작가가 고교생임을 확인하고 입선으로 등급을 낮췄다느니, 이에 화가나 군 입대하며 투고한 소설이 결국 조선일보에 당선됐는데 논산훈련소에서 당선소식을 들었다는 식의 그의 천재성을 웅변하는 에피소드는 단지 양념에 불과했다. 산업화시대의 여러 사회적 모순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통속적으로 접근했다는 참여문학론자들의 비난도 역시 그의 거침없는 행보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는 우리들에게 특히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폭풍처럼 다가왔다. <별들의 고향>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그리고 그가 시나리오를 쓴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 <고래사냥>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별들의 고향>의 호스테스 경아(안인숙 분)의 슬픔에 함께 가슴 아파했고 <병태와 영자>의 병태(손정환 분)와 영자(이영옥 분)의 방황에 동참했었다. 그의 쓰나미와도 같은 감성적 세례는 1975년작 <바보들의 행진>이 클라이맥스였다. 유신시절의 암울할 학창생활에 짓눌려 있던 우리들은 동해바다로 고래 잡으러 떠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영철(하재영 분)이 마치 자신의 분신인 양 목청껏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을 불러대며 밤을 새웠다. 극성파들은 주인공 영철처럼 정말 가출과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인호는 대학에 들어가 우리가 이념에 눈을 뜨고 데모에 휩쓸리면서 공감과 동경의 대상이 아닌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우리는 그 대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과 황석영의 <객지> 등 사회참여적 소설에 더 몰입했다. 정말 10여 년간 최인호를 잊고 살았다. 그가 다시 다가온 것은 <길 없는 길> <왕도의 비밀> <사랑의 기쁨> <상도> <지구인> <유림> 등 묵직한 주제를 다룬 본격대하소설을 잇달아 발표한 이후였다. 역시 그는 대가였다. <별들의 고향>을 썼던 대중소설가 최인호가 동명이인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의 진화였다.

하지만 나는 이 대작 시리즈보다는 월간지 <샘터>에 연재되던 <가족>에 더 이끌렸다. 매월 그가 맛깔스럽게 풀어낸 그의 가족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의 연재소설 <가족>을 보기 위해 <샘터>를 펴들었던 적이 더 많았다.

‘결혼하고 나서 나는 우리집 아내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적이 정확히 세 번 있었다.…’로 시작되는 그의 연작소설 <가족>이 월간 <샘터>에 연재된 것은 1975년 9월호부터였다. 우리는 <가족>을 통해 ‘다혜’와 ‘도단’이가 어른이 돼가는 것을 보았고 횟수를 거듭할수록 작가의 진짜 가족처럼 일체화해가는 감정이입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은 한 편 한 편이 짧은 연작소설이지만 우리 인생의 길고 긴 사연들이 켜켜이 녹아있는 한국의 ‘현대생활사’였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이 연작소설을 그만두지 않겠다던 대작가가 마침내 병마에 쫓겨 34년 6개월만인 지난해 10월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중단했다. 난 그가 또 다른 대하소설을 쓸 수 없게 된 것보다 매월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된 게 더 아쉽다. 부디 그가 병환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나 우리를 설레임과 초조에 휩싸이게 할 아련한 청춘연애소설을 다시 한 번 써주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역시 불로(不老) 작가 이외수 님이 ‘청춘불패’라고 갈파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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