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효과·안정적 운영… ‘임시’ 감독 황선홍, 전술 용병술 빛났다

손흥민(가운데)이 26일 태국을 상대로 두번 째 골을 넣은 뒤 이강인(왼쪽) 조규성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손흥민(가운데)이 26일 태국을 상대로 두번 째 골을 넣은 뒤 이강인(왼쪽) 조규성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강태산 기자]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한국 축구가 희망을 찾았다. 악몽 같았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새롭게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황선홍 감독이 이끈 축구 대표팀이 26일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태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4차전에서 이재성(마인츠), 손흥민(토트넘), 박진섭(전북)의 연속 골에 힘입어 3-0으로 이겼다.

한국은 무실점 완승으로 2차 예선 무패 행진(3승 1무)을 이어가며 조 선두(승점 10)를 달렸다.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로 임시 지휘봉을 잡은 황선홍 감독은 A매치 감독 첫 승을 신고하며 1승 1무로 맡은 2연전을 마무리했다.

사분오열됐던 팀이 ‘원팀’으로 거듭났고, 말썽을 일으켰던 이강인은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주장 손흥민은 그간의 마음 고생을 훌훌 털고 마침내 활짝 웃어 보였다. 아시안컵 이후 벼랑 끝으로 몰렸던 축구 대표팀이 기사회생하며 아시아의 맹주로 다시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무엇보다 임시 지휘봉을 잡은 황선홍 감독의 역량이 큰 힘이 됐다. 준비 기간이 짧았음에도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보여줬다. 조직력 문제도 말끔하게 해결했고, 무더위 속에서 선수들이 지치지 않고 경기를 이끌어가는 방법도 찾아냈다. 선수 선발과 기용도 인상적이었다.

26일 태국전에서 황선홍 한국 감독과 코치진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6일 태국전에서 황선홍 한국 감독과 코치진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강인은 원맨쇼를 펼치며 공격의 활로를 뚫었다. 현란한 개인기로 상대 선수들을 희롱했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이강인은 전반 절묘한 패스로 이재성의 선제골을 이끌어냈다. 이강인의 패스를 받고 득점 기회를 잡은 조규성(미트윌란)의 슈팅이 골문으로 흐르자 이재성이 달려들어 밀어넣었다. 

손흥민이 후반 9분에 터트린 두번 째 골도 이강인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이강인의 왼발 침투패스가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뛴 손흥민에게 정확히 전달됐고, 손흥민이 주특기인 빠른 드리블로 수비수를 제친 후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강인은 손흥민에게 달려가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이강인은 막힌 혈을 뚫듯 상대의 밀집 수비벽을 파고들었다. 견고한 댐이 무너지듯 태국의 철통 수비는 맥없이 무너져내렸다. 공격의 시작도 마무리도 이강인의 몫이었다.  손흥민과의 호흡도 환상적이었다.

이강인은 후반 19분 송민규(전북)와 교체될 때까지 74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이번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대표팀이 얻은 골의 8할 이상을 이강인과 손흥민이 합작했다. 이강인-손흥민의 플레이는 그야말로 월드 클래스다.    

이제 이강인 없는 한국 축구는 상상할 수 없게 됐다. 이강인이 ‘버릇없는’ 행동으로 팬들을 실망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태국 2연전을 통해 속죄하고 한국 축구의 미래에 희망을 안겼다. 이강인은 성장하는 단계이고 한국 축구는 물론 세계 축구를 이끌어 갈 미래의 자산이다.

이강인이 26일 태국과의 경기에서 프리킥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강인이 26일 태국과의 경기에서 프리킥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캡틴’ 손흥민도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버린 듯,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장면이었다. 경기 후 선수들을 격려하고 인터뷰를 하면서도 트레이드마크인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손흥민은 아시안컵에서 몸과 마음을 다쳤다. 소속팀 복귀 후 “생애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고백했었다. 대표팀을 떠날 수도 있다고 발언했고 실제로 태극 마크 반납도 결심하기도 했다.

손흥민은 그러나 “대표팀 선수로 뛰는 것도, 주장의 역할을 하는 것도 팬들과의 약속”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주장의 무거운 짐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손흥민은 왜 그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주장이어야 하는지, 다시 증명했다.

손흥민이 26일 태국전에서 골을 넣은 뒤 찰칵 세러미니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손흥민이 26일 태국전에서 골을 넣은 뒤 찰칵 세러미니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풀타임을 뛴 손흥민은 자신의 125번째 A매치에서 46호 골을 넣었다. 현역 시절 국가대표 간판 스트라이커였던 황 감독(103경기·50골)과 격차는 4골로 줄었다. 손흥민은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황 감독에 이어 우리나라 역대 A매치 득점 3위다.

손흥민이 26일 태국전에서 이강인의 패스를 받아 두번째 골을 넣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손흥민이 26일 태국전에서 이강인의 패스를 받아 두번째 골을 넣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손흥민은 “더운 날씨, 어려운 환경에서 선수들의 헌신과 노력 덕에 좋은 경기를 했고, 좋은 결과를 얻어내 기분이 좋다. 오늘 분명히 보셨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한 팀이 돼서 멋진 경기를 했다”고 기뻐했다.

손흥민은 “늦은 시간까지 응원해주신 팬들 덕분에 무실점 승리를 거뒀다. 선수들이 한 발 더 뛰고, 1%씩 더 희생한 덕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 좋은 분위기를 이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승리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많은 것을 얻어낸 원정길이었다. 팬들의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대표팀에 대한 신뢰와 기대도 다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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