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임신 32주 전 태아 성감별 금지 조항 ‘위헌’
여아 낙태 막고자 1987년 제정… “남아선호 사라져”

출산. (출처: 연합뉴스)
출산.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감별을 금지하는 현행 의료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무분별한 여아 낙태를 막기 위해 마련된 ‘태아 성감별 금지법’이 1987년 제정된 지 3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헌재는 28일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헌재는 “태아의 성별 고지를 제한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고,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약하여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했다.

이종석·이은애·김형두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취지에는 뜻을 같이했지만 단순위헌 결정으로 해당 조항을 일거에 폐지하는 방안에는 반대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비록 과거보다 그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낙태로부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위헌 결정을 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을 대안 없이 일거에 폐지하는 결과가 되므로 타당하지 않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해 입법자가 태아의 성별 고지를 제한하는 시기를 앞당기는 개선 입법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행 의료법 20조 2항은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임신부나 그 가족 등이 알게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태아 성 감별 금지 조항은 남아 선호에 따른 성 선별 출산과 성비 불균형 심화를 막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당시 의료법에 ‘의료인은 태아 또는 임부에 대한 진찰이나 검사를 통해 알게된 태아의 성별을 임부 본인, 그 가족 기타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하여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헌재는 2008년 임신 기간 내내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이 헌법에 맞지 않는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2009년 의료법이 개정돼 임신 32주 후부터 태아 성별 고지가 허용됐다. 그러던 2022년과 지난해, 임산부 등 청구인 3명이 다시 태아 성 감별 금지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이들은 저출산이 심해지고 남아선호가 거의 사라진 데다 부모의 알 권리를 위해 모든 임신 기간에 성별 고지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합헌을 주장하는 측은 ‘낙태가 여전하기 때문에 태아 보호를 위해 해당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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