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엄마 대신 동생들 돌봐
경찰, 관계 기관 협력해 지원

경찰 마크. ⓒ천지일보DB
경찰 마크. ⓒ천지일보DB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7남매 가정의 맏이인 고등학생이 자전거를 훔친 혐의로 수사 선상에 놓였다가 복지 사각지대에 처해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관계 기관의 복지지원을 받게 됐다.

2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0일 고등학생 A군이 경기도 오산경찰서 한 지구대를 직접 찾아와 자수하며 자전거 절도 사건 경위를 밝혔다.

A군은 자수하기 이틀 전인 지난해 11월 18일 늦은 오후 오산시의 한 아파트 내에 잠금장치가 돼 있지 않은 자전거를 타고 귀가했다.

아버지가 택배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어머니가 심부전과 폐 질환 등으로 질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포함해 7남매의 맏이였던 A군은 생계를 위해 집 근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7남매에 부모까지 합쳐 이들 9명의 가족이 사는 곳은 14평짜리 국민임대아파트로, 주거 환경도 비교적 열악한 상황이었다. A군의 가정형편은 어려웠지만 부친의 생계형 차량 보유 조건 등으로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 속하지 않아 복지사각지대에 놓였던 것으로 보인다.

자전거를 훔쳤던 날은 아르바이트가 평소보다 늦게 마쳤는데 중학생·초등학생·유치원생·생후 7개월 된 젖먹이 등 어린 동생들의 저녁을 챙겨주기 위해 서둘렀고, 귀가 도중 자신의 친구 자전거로 착각해 집에 타고 갔다가 다시 돌려주게 됐다.

사연을 전해 들은 경찰은 A군 가족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판단하고 주민센터와 보건소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그의 보호자를 면담하고 아이들의 건강 상태도 살폈다. 그 결과 오산시, 오산경찰서, 주민센터, 청소년센터, 보건소, 복지기관 등 7개 기관은 지난 6일 통합 회의를 열어 A군 가정에 실질적인 복지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생활지원으로는 긴급복지지원(320만원×3개월), 가정후원물품(이불, 라면 등), 급식비(30만원), 주거환경개선(주거지 소독), 자녀 의료비(30만원)·안경구입비(10만원) 등을 제공했다.

또 교육지원으로는 초·중등 자녀(3명) 방과후 돌봄 제공, 중학생 자녀 대상 운동프로그램 제공 및 진로 상담을 했고, 주거지원으로는 기존 주택 매입임대제도(최대 8년 임대)를 지원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다.

법원은 A군에게 벌금 10만원 선고유예를 결정했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사실상 없던 일로 해주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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