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박승석(朴勝錫)은 종두인허원(種痘認許員)으로서 연천에서 우두법(牛痘法)을 실시했다는 것인데 어떤 계기에 의해 두창(痘瘡)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내력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종두인허원으로서 연천에서 우두(牛痘)를 시술했던 박승석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살펴 보기로 한다.

박승석의 자(字)는 여삼(汝三)이요, 본관은 반남(潘南)으로서 선조(宣祖) 대의 문신(文臣)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扈從)했으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친교가 두터웠던 활당(活塘) 박동현(朴東賢)의 11대손으로 1865(고종 2)년 12월 19일 박기양(朴沂陽)과 연안김씨(延安金氏) 사이에 5형제 중 3남으로 경기도 연천군 군내면 상리 율동에서 탄생했다.

이와 관련해 박승석이 탄생한 1865(고종 2)년은 국외적으로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암살당했으며, 국내적으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시작한 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박승석의 친동생이 되는 박승준(朴勝駿)과 관련된 사연을 소개한다.

박승준은 1764(영조 40)년 공자 이후 2000년동안 유학을 발전시켜 온 중국 및 우리나라 대학자들의 위패를 봉안해 제향하는 사당인 문묘(文廟)에 배향된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의 9대 종손으로 출계(出系)했는데, 그가 어떠한 내력으로 출계를 하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모르는 점에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박세채는 조선 후기 숙종(肅宗) 때 좌의정으로 재임한 정치가이면서 대학자라 할 수 있는데, 당시 소론의 영수(領袖)로서 당쟁을 타파하기 위한 탕평론(蕩平論)을 최초로 건의한 인물이었다.

또한 남계(南溪)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문인(門人)으로서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으며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남계집(南溪集)’ 125권을 비롯해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39권, ‘육례의집(六禮疑輯)’ 33권, ‘남계예설(南溪禮設)’ 20권, ‘숭효록(崇孝錄)’ 14권, ‘범학전편(範學全編)’ 7권, ‘춘추보편(春秋補篇)’ 3권, ‘심학지결(心學旨訣)’ 2권 등이 있다. 또한 ‘변례질문(變禮質問)’ ‘삼례의(三禮儀)’ ‘고금문종(古今文宗)’ ‘교법요지(敎法要旨)’ ‘선성수필(先聖手筆)’ ‘명계순절록(明季殉節錄)’ ‘계치록(稽治錄)’ ‘독시요의(讀詩要義)’ ‘논맹요의(論孟要義)’ ‘성현유모전편(聖賢遺模前篇)’ ‘가어외편(家語外篇)’ ‘낙경유편(樂經遺篇)’ ‘태사장절공유적(太史壯節公遺蹟)’ ‘주자대전습유(朱子大全拾遺)’ ‘증산염락풍아(增刪濂洛風雅)’ ‘거가요의(居家要儀)’ ‘이학통록보집(理學通錄補集)’ ‘이락연원혹(伊洛淵源錄)’ ‘퇴계어록(退溪語錄)’ ‘율곡속외별집(栗谷續外別集)’ ‘심경요해(心經要解)’ ‘가례요해(家禮要解)’ 등 수백여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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