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국가가 안전성 보장 못해”
원고 3명에 300~500만 배상
구제급여 받은 피해자는 제외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가습기 살균제를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가습기 살균제를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법원이 가습기살균제를 쓰다가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9부(재판장 성지용)는 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모씨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자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것으로 재판부는 피해자들에게 300만~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가 불충분했는데도 환경부 장관 등이 그 결과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하고 10년 가까이 방치한 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또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환경부 장관 등이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며 “재작년 3월 31일 기준 사망자가 1751명에 달할 정도로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고”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공표 단계에서 공무원 과실이 있는지를 면밀히 본 결과 재량권 행사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위법하다”며 “결과적으로 국가 배상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원고 5명 가운데 2명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법상 구제급여조정금을 지급 받아 위자료를 요구할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 2008∼2011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원인 모를 폐 손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은 2014년 국가와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제조업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증거부족을 이유로 국가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이후 원고 10명 중 5명이 국가를 상대로 패소한 부분만 항소해 2심이 진행됐다.

2심 재판부는 애초 지난달 25일을 선고기일로 잡고 재판까지 열었지만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마지막까지 신중히 검토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선고를 이날로 2주 늦추기도 했다. 피해자를 대리한 송기호 변호사는 이날 선고 후 “화학물질을 심사한 환경부의 공문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당시 공무원에 대해 조사를 해 나온 증거가 이번 항소심 판결에 제출돼 1심 판결이 뒤집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이어 “국가가 단순히 피해자들을 시혜적으로 돕는 것이 아닌, 법정 의무자로서 가습기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법원이 확인한 판결"이라며 "국가가 이 판결에 대해 상고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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