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는 일용직 근로자
"혹시라도 일거리 있을까 봐"
허탕 치고 돌아가는 날 부지기수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5일 오전 4시 30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삼거리 인력시장에 일용직 근로자 150여명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모여 있다. ⓒ천지일보 2024.02.05.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5일 오전 4시 30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삼거리 인력시장에 일용직 근로자 150여명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모여 있다. ⓒ천지일보 2024.02.05.

[천지일보=홍보영, 김민희 기자] “설 연휴라는 게 달리 뭐 있나. 우리야 중국에서 와서 쉴 것도 없는데 일할 수 있으면 좋은 거지.”

5일 오전 4시 30분께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삼거리. 불 켜진 인력사무소와 지하철역 출구만이 어둑한 새벽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삼거리 일대에는 150명 남짓한 근로자들이 남극 펭귄처럼 무리 지어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귀마개, 방한 마스크로 무장하고 등에 멘 배낭은 허리춤 밑까지 내려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오전 5시께 근로자들이 담배를 태우거나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며 일감을 기다리는 사이 이들을 실어 갈 승합차가 속속 도착했다. 그러나 차에 타지 못하고 인력시장에 남겨진 근로자들이 훨씬 많았다. 선택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5시 반께부터 하나둘씩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6시쯤 되자 삼거리에 북적이던 근로자들은 썰물처럼 빠졌다.

입춘을 맞이했지만 건설 현장 인력시장은 아직도 꽁꽁 얼어 붙어있다. 부동산 시장 위축과 고금리 여파로 건설경기 불황이 이어진 탓에 새벽부터 일거리를 찾아 나선 근로자들은 발길을 돌리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전국 건축 인허가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착공 건축물은 11만 4743동이었다. 전년도 같은 기간 15만 4507동이 착공된 것과 비교해 25.7% 감소했다. 건설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아파트 등 주택 착공 물량도 줄었다. 지난해 주택 착공 물량은 전국 23만 1549가구(예정 물량 포함)로, 이 중 상반기 분양 실적은 7만 4723가구로 나타났다. 전년도 같은 기간(16만 5436가구)과 비교해 45% 수준에 그친 것이다.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5일 오전 4시 30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삼거리 인력시장에 일용직 근로자 150여명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모여 있다. ⓒ천지일보 2024.02.05.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5일 오전 4시 30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삼거리 인력시장에 일용직 근로자 150여명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모여 있다. ⓒ천지일보 2024.02.05.

이 같은 건설 경기 부진은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직격타를 입혔다. 통계청이 발표한 일용직 근로자 추이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근로자 중 일용직 근로자는 104만 2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건설업 일용직은 50만 3000명으로, 2014년 이후 가장 적었다.

이날 남구로역 인력시장에서 만난 중국인 A(67)씨는 “여기 있는 사람 중 10분의 1도 일 못 나간다”고 귀띔했다. A씨는 형틀 목수 기술을 갖고 있지만 잡부로 뛰려고 인력시장에 나왔다고 한다. A씨는 “혹시라도 일거리가 있나 싶어서 나오는 거다”면서 “별다른 방도가 없다. 돈 없는 대로 사는 거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오전 4시 반부터 인력시장을 전전하던 중국인 B(30대)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B씨는 지난달까지 건설 현장에서 팀으로 일하다가 일용직을 찾으러 나왔다. B씨는 “한 달 꼬박해서 20일만 일해도 괜찮은 축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에는 그나마 사정이 좋아 22~23일은 일했는데 이번 달은 못 나가는 날이 많다”며 “아침잠을 줄여서라도 조금 일찍 나오려 한다”고 말했다.

건설업에서 25년간 종사한 인력사무소 소장 C씨는 “옛날에는 일이 많이 터지면 이 앞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일하러 나갔었다”며 “지금은 일 못 가고 다들 남아있다. 그만큼 경기가 안 좋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가 최고 고비인 것 같다”고 근심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C씨의 말대로 올해도 건설경기는 불황이 예상된다. 기획재정부는 2024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수출을 중심으로 회복세가 확대되겠으나 건설경기 부진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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