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구 90% 이상, WHO 기준 이하 대기질에서 살아
印·파키스탄 서로 협력 필요… 태국은 비교적 적극 대처
작년 미국, 산불에 평균 66% 더 많은 대기 오염에 노출

2022년 주요 도시의 평균 PM2.5 농도 (출처: elements) ⓒ천지일보 2024.01.28.
2022년 주요 도시의 평균 PM2.5 농도 (출처: elements) ⓒ천지일보 2024.01.28.

[천지일보=이솜 기자] 파키스탄 동부 도시 라호르는 멋진 정원으로 유명한 도시이지만 동시에 끔찍한 대기질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이곳에서는 최근 몇 달 동안 유독성 스모그로 인해 주민 수만명이 병에 걸렸다. 시야가 흐려 항공편도 취소됐으며, 지난달에는 스모그 퇴치를 위해 인공강우가 전국 최초로 실시됐다. 그러나 효과는 없어 보인다.

라호르는 산업, 운송 등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오염 물질이 지역 날씨와 지형 때문에 쉽게 분산되지 않고 갇히는 지역인 에어셰드(airshed)에 속해있다.

에어셰드는 국경을 넘는 공기 오염의 원인이기도 한데, 특정 바람 조건에서 인도 수도 뉴델리 오염의 30%는 라호르가 주도인 파키스탄 펀자브주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남아시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공기 오염이 심한 도시들이 모여 있는 6개의 주요 에어셰드가 있다.

전 세계 대기 오염 4분의 3을 흡수하고 있는 6개국(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중국,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도 대부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다.

이같이 동남아 국가들의 대기질 악화 문제는 심각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런데 지구가 점점 따뜻해지며 산불이 잦아지는 미국 등도 이제 미세먼지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2022년 공기질 최악의 도시 순위. (출처: elements 홈페이지 캡처)
2022년 공기질 최악의 도시 순위. (출처: elements 홈페이지 캡처)

◆대기 오염에 매년 700만명 조기 사망

대기 오염은 주로 화석 연료의 연소를 통해 발생한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차량(자동차, 트럭, 항공기, 선박 등)과 석탄 또는 석유를 태우는 발전소, 공장이 가장 큰 원인이다. 즉 대부분 사람이 일으키는 셈이다.

또 목재나 화석 연료를 태우는 모든 활동은 미세먼지를 배출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담배 제품, 스토브나 오븐, 양초, 벽난로와 같은 가정 내 배출원도 포함된다. 화산과 산불도 대기 오염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대기 오염은 호흡 문제, 천식 악화, 선천성 장애 같은 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입증됐다. 비영리기관인 퓨어어스에 따르면 독성 오염은 전 세계적으로 비전염성 질병의 주요 위험 요인 중 하나다.

비전염성 질병은 전체 사망의 72%를 차지하며, 이 중 16%는 대기 등의 독성 오염으로 인한 사망이다. 또한 미세먼지는 발암성 물질로, 폐 질환, 심장 질환, 뇌졸중의 위험을 높인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따르면 폐암의 36%, 뇌졸중의 34%, 심장병의 27%가 미세먼지 배출과 관련이 있다. 또 대기 오염으로 매년 700만명이 조기 사망한다고 WHO는 밝혔다.

이 가운데 세계 인구의 91~99%가 대기 오염도 WHO 권장 지침(연간 m³당 5μg)을 초과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는 연구 결과는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스위스의 대기질 분석업체 아이큐에어(IQAir)의 가장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국가와 지역 131개 중 13개만이 건강한 대기질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대상 국가 및 지역의 약 90%에서 연평균 대기 오염도가 WHO 대기질 기준을 초과했다는 것이다.

호주, 에스토니아, 핀란드, 그레나다,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등 6개 국가와 괌, 푸에르토리코를 포함한 태평양 및 카리브해 지역의 7개 지역만이 WHO 평균 대기 오염도 기준을 충족했다. 반면 차드, 이라크, 파키스탄, 바레인, 방글라데시, 부르키나파소, 쿠웨이트, 인도 등 7개 국가는 평균 대기 오염도가 세제곱미터당 50마이크로그램(㎍) 이상으로 WHO 기준치를 훨씬 초과했다.

작년 3월 랜싯 플래니터리 헬스는 전 세계 육지 면적의 약 99.82%가 WHO 권고 안전 한도를 초과하는 위험한 수준의 초미세먼지(PM2.5)에 노출돼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초미세먼지는 폐암 및 심장병과 같은 심각한 질병과 관련이 있는 공기 중의 작은 입자다. 이 연구도 역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대기질이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라호르 한 시장에 마스크를 착용한 여성들이 방문했다. 주민들은 대기질이 너무 나빠 마스크를 착용했다. (출처: 뉴시스)
지난 15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라호르 한 시장에 마스크를 착용한 여성들이 방문했다. 주민들은 대기질이 너무 나빠 마스크를 착용했다. (출처: 뉴시스)

◆美 산불 연기 치명적… 발칸반도 공기도 악화

아시아 국가들의 대기질이 상대적으로 낮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나 유럽 등의 공기가 무조건 깨끗하지는 않다.

미국은 일상이 된 산불 시즌이 문제다. 작년 산불 시즌 당시 미국의 화재 관련 대기 오염이 이전 기록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고 24일(현지시간) 미 매체 악시오스가 에어나우를 인용해 보도했다.

에어나우의 정보에 따르면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는 지난 여름 주민들이 2014~2022년 평균보다 약 69% 더 많은 미세 입자 오염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도시 주민들의 평균 대기질 지수는 2022년 같은 기간보다 1.5배 나빴다. 최악의 날은 2023년 6월 28일이었다. 이는 작년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산불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지난해 미국인들은 이전 기록적인 해보다 평균 66% 더 많은 대기 오염에 노출됐다.

산불 연기로 인한 미세 입자 오염(PM2.5)에 노출되면 목과 눈을 자극하고 호흡 문제를 일으키며 심장 질환과 호흡기 질환을 악화시킨다. 또한 산불 연기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며 미국 글로벌 변화 연구 프로그램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이에 따른 노동력 손실로만 연간 1440억 달러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9월 9일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대기가 뿌연 모습. (출처: 뉴시스)
2020년 9월 9일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대기가 뿌연 모습. (출처: 뉴시스)

산불 연기는 미국 서부에서 주로 발생했으나 지난해에는 동부 해안과 대서양 중부도 기록적인 연기에 노출됐다. 기후중심(Climate Central)의 분석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산불 연기가 늘면서 30개주에서 오염 저감 노력으로 수십년 동안 개선된 대기질이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혹은 더 악화했다.

악시오스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인해 화재 발생 시기가 길어지고,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화재의 강도가 강해져 앞으로 더 많은 연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최신 보고서도 향후 온난화로 인해 화재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에서는 유럽 남, 동쪽 발칸반도 지역의 공기가 특히 나쁘다.

작년 9월에는 영국 일간 가디언이 위성 이미지와 1400개 이상의 관측소 측정값을 포함해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유럽 대륙의 인구 98%가 대기 오염 지역에 살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거의 3분의 2는 대기질이 WHO 가이드라인의 두 배 이상 나쁜 지역에 살고 있었다.

유럽에서 최악의 피해를 입은 국가는 북마케도니아였다. 전국 인구의 거의 3분의 2가 초미세먼지 기준치의 4배가 넘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수도 스코페를 포함한 4개 지역은 대기 오염이 6배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유럽도 서유럽과 비교하면 심각한 대기 오염을 보였다. 이탈리아 북쪽의 포 계곡과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WHO가 정한 미세먼지 수치의 4배에 달하는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PM2.5 오염으로 인해 유럽 전역에서 매년 약 40만명이 사망한다고 추정한다.

최근 유로뉴스에 따르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에는 지난달부터 간헐적으로 유독성 안개가 내려와 일부 주민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기도 했다.

이 나라의 대기질 문제는 오랜 기간 이어졌다. 2020년 WHO는 보스니아가 유럽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국가 중 하나로 대기질이 세계 최악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공기 흐름을 막는 고층 빌딩의 확산, 오염도가 높은 노후 차량의 사용, 도시 난방을 위한 석탄 의존도 증가에 기인한다고 유로뉴스는 전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보스니아에서는 매년 약 3300명이 대기 오염에 노출돼 조기 사망하며, 이는 전체 연간 사망자의 9%를 차지한다. 이 중 약 16%는 사라예보와 북서부 도시인 반자루카에서 발생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스모그가 지역을 뒤덮어 시야를 가리는 가운데 차량들이 고속도로에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주행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7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스모그가 지역을 뒤덮어 시야를 가리는 가운데 차량들이 고속도로에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주행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국경 넘는 대기 오염… 동남아 도전 직면

동남아시아는 개별 국가보다 지역 전체의 계획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대기질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한 국가 간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AP통신에 따르면 이 지역의 정치적 관계가 불안정한 데다가 양국의 선거까지 겹쳐 대기질 개선을 위한 협력은 좀처럼 쉽지 않다.

우선 최악의 대기질 국가인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는 단절돼 있다. 두 나라의 교류는 적대감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세 차례의 전쟁을 치르며 군대를 증강하고 핵무기를 개발했다. 여행 제한과 적대적인 관료주의는 사람들이 여가, 학업, 업무를 위해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막고 있지만, 종교적 성지 순례는 예외로 하고 있다.

비영리 단체인 지속 가능한 개발 정책 연구소의 파키스탄 분석가 아비드 술레리는 AP통신에 “기술·과학계에서는 대기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데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파키스탄 국경 양쪽의 원인과 문제는 동일하기 때문에 한 주에서만 조치를 시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술래리는 지역 또는 국제 포럼은 정부가 직접 또는 공개적으로 협력하지 않더라도 대기 오염에 대한 솔직한 토론의 기회를 제공한다며 “각국은 대기 오염을 추운 날씨와 함께 찾아오는 계절적 문제가 아니라 연중 내내 발생하는 문제로 취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기권 관리에는 지역 계획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올해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선거가 있고 정부 간 협력은 아직 이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전했다.

지속 가능한 미래 협력 싱크탱크의 연구원 바르가브 크리슈나에 따르면 인도에서 대기 오염은 때때로 선거 공약으로 나오긴 해도 유권자들의 큰 관심사는 아니다.

국제기구는 파키스탄인의 거의 93%가 심각한 수준의 오염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인도에서는 인구의 96%에 달한다. 이 두 나라에서만 15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농도 대기 오염에 노출된 셈이다.

파키스탄 펀자브주에서는 매년 약 22만명이 대기 오염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호흡기 전문의인 카와르 압바스 쇼드리 박사는 이번 겨울에 호흡기 질환자가 100% 증가했다고 AP통신에 전했다. 그는 이러한 증가의 원인을 대기 오염으로 보고 있다. 쇼드리 박사는 “국가, 정부, 부처가 모두 (대기 오염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며 정기적으로 만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나라만큼 초미세먼지가 심각한 태국은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대중교통 전 차량을 전기차로 교체하겠다고 하고, 수확기에 사탕수수를 태우지 않고 잘라내는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최근엔 대기오염방지법을 의회에서 승인해 법안 초안에 대한 논의도 시작됐다.

이번 법안에는 태국 내부에서뿐 아니라 국경을 넘는 대기 오염까지 불법으로 간주해 배상금을 물린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법안이 발효되면 위성기술을 활용해 오염원을 찾아낸다는 방침이다.

또 태국 정부는 주변국과도 대기 오염 완화 대책을 찾기 위해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태국의 수도 방콕과 북부 도시 치앙마이는 작년 며칠 동안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WHO는 태국에서 매년 약 3만명이 대기오염 영향으로 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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