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희망사진관 사진사 김창환씨가 손님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카지노 출입에 노숙인 전락
홈리스 월드컵에 새로운 삶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자, 찍겠습니다. 활짝 웃어보세요. 좋아요. 김치~.”

‘찰칵. 찰칵.’ 김창환(43, 남)씨 카메라의 경쾌한 셔터 소리만큼 그의 표정도 밝다. 길다면 긴 노숙인의 삶에서 사진사의 삶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학대학을 다니다가 어학연수를 위해 떠났던 2007년도 아일랜드에서 카지노에 출입하게 되면서 모든 것을 잃고 노숙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세상과 단절한 뒤 길거리에서 자고 햄버거, 감자튀김 주워 먹으면서 살았죠.”

카지노에 빠져 절망 속에서 삶을 포기했던 그는 아일랜드에 있는 한 노숙인 자활시설로 들어갔다. 김씨는 “몇 년 지내니 시설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나태해진 내 모습을 봤다”며 “2014년 홈리스 월드컵을 나가면 한국에 집을 얻을 기회가 생겨 참가하게 됐고, 한국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노숙인 인식개선사업의 하나인 홈리스 월드컵은 전 세계 노숙인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된 축제다.

조금씩 자활 의지가 생긴 김씨는 한국에서 노숙인 등 주거취약계층에게만 잡지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줘 자활의 계기를 제공하는 빅이슈를 알게 됐고, 한국외대 앞에서 잡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때 많은 시민의 응원도 김씨의 자활에 밑바탕이 됐다. 김씨는 “비타민C 등 영양제를 선물 받기도 했고, 외국인 유학생들이 음식을 가져다 줄 때도 있었다”며 “어떤 물건보다도 그 마음이 정말 감사했다”고 회상했다.

“날씨 탓인지 잡지가 판매되지 않았던 어느 추운 겨울엔 따뜻한 음료와 쪽지를 준 여성 두 분이 기억에 남아요. 그 쪽지를 붙들고 1시간 동안 길거리에서 울었어요. 그 마음이 매우 감사해서….”

김씨는 지갑에서 여성이 준 쪽지를 꺼내 보고 잠시 말이 없었다. 잇따른 시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은 여전히 삶을 개척할 자신이 없었던 김씨에게 용기를 북돋아줬다. 그는 “이전까지 나의 모습을 숨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또 ‘못하겠다’는 생각에 늘 자신이 없었다”며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의지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후 빅이슈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중 ‘조세현의 희망프레임’이라는 강좌를 접하게 됐다. 그는 여행 다니면서 잠깐씩 사진을 찍어본 경험을 떠올려 참여했다.

사진 강좌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김씨에게 새로운 직장이 생겼다. 9월 초부터 김씨는 함께 강좌를 수료한 이태환(41, 남)씨와 함께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희망사진관에서 사진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침에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할 때 사람답게 사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는 임대주택에도 입주했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한 김씨는 영어, 일어에 능통하고 스페인어도 조금 할 줄 안다. 그는 광장을 찾는 외국인관광객에게 말을 걸어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광화문과 경복궁, 북악산 등을 설명하는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아직은 작가적 소질은 부족하지요.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아 어려운 나라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가르쳐서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통해 꿈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한편 희망사진관은 23일 2013년에 이어 두 번째로 공식 문을 열었다. 이에 앞서 이태환씨와 김창환씨는 지난 1일부터 사진관을 시범 운영해왔다. 이들은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즉석에서 인화해 종이 액자, 머그잔, 기념타월에 담아 판매하고 있다. 수익금은 노숙인의 자활․자립에 활용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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