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현배

옛날 폴란드의 포비실레 지방을는 흐르는 비스와 강에 인어들이 살고 있었다. 인어는 허리 위는 사람이고 허리 아래는 물고기인데, 해가 뜨면 수면 위로 올라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온종일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랫소리는 강바람을 타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크 강까지 울려 퍼졌다.

날이 저물면 인어들은 노래를 그치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인어는 보름달이 뜨면 홀로 남아 밤새도록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인어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맑았다. 귀를 기울이면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종달새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혹은 바이올린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비스와 강 유역에는 숲에 둘러싸인 마을이 하나 있었다. 숲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서 곰·늑대·순록·들소 등 온갖 야생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마을에 사는 늙은 사제 바르나바는 체르스크의 왕궁에 갔다가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폴란드 왕국의 왕자와 아주 가까웠다. 그래서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 깊은 밤이었다. 비스와 강가에 이르렀을 때 바르나바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강 저편에서 맑고 고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이 깊은 밤에 누가 노래를 부르는 거지? 아주 환상적인 노래네. 이 세상 사람이 부르는 것 같지 않아.’

바르나바는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의 주름투성이 얼굴은 만족스러운 듯 웃음이 잔잔히 흘렀다.

‘그래, 저 노래는 인어가 부르는 노래일 거야. 비스와 강 수면 위로 올라와 인어들이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고 했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바르나바는 언젠가 들은 인어에 대한 소문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인어가 부르는 노래라서 저렇게 훌륭하구나. 들으면 들을수록 노래 속에 빨려드는 느낌이야.’

바르나바는 홀린 듯 노래를 듣다가 눈을 번쩍 떴다.

‘이 근처에 인어가 살고 있을 거야. 어떻게 생겼는지 강가로 몰래 다가가서 구경 좀 할까?’

바르나바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섣불리 다가갔다가 들키기 쉽지. 아마 인어가 금세 눈치채고 물속으로 사라져 버릴걸.’

바르나바는 인어를 보러 가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정말 아름답다. 인어의 노래를 들으면 왕자님이 매우 기뻐하시겠지?’

바르나바는 왕자를 머릿속에 떠올리고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인어를 잡아 왕자님께 선물로 바칠까? 그럼 왕자님은 뛸 듯이 기뻐하시겠지? 왕자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어.’

바르나바는 인어를 잡아 왕자에게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다음 날 같은 마을에 사는 친한 어부 두 사람을 집으로 불렀다. 시몬과 마테우쉬였다.

“자네들이 나를 도와줘야겠네. 비스와 강에서 밤마다 노래하는 인어를 잡아 왕자님에게 바칠 생각이거든.”

시몬과 마테우쉬가 반색을 했다.

“아, 그러세요? 저희가 당연히 사제님을 도와드려야지요. 오늘 밤에 함께 강가로 나가요.”

“그래요, 사제님. 인어를 잡으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해요. 풀과 나뭇가지로 위장을 하고 강가로 천천히 접근해야 합니다.”

바르나바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렴, 그래야지. 나는 자네들만 믿네. 오늘 밤 인어 사냥에 나서기로 하세.”

그날 저녁, 시몬과 마테우쉬는 해가 지자 바르나바의 집에 모였다. 그리고 실버들 가지를 꼬아 올가미를 만든 뒤 비스와 강가로 향했다. 이 올가미는 인어를 향해 던져 단번에 잡을 올가미였다. 강가에 도착한 세 사람은 풀을 뜯고 나뭇가지를 꺾어 온몸을 위장했다. 그래야 덤불 속에 엎드려 있어도 인어에게 들킬 염려가 없는 것이다.

보름달이 떠오르자 세 사람은 덤불 속에 숨어 인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갑자기 무엇인가가 불쑥 물 위로 떠올랐다. 그것은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에 윤기 있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인어였다. 인어는 처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래서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맑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세상 사람들이 듣는 평범한 노래가 아니었다. 누가 들어도 매혹당할 뛰어난 노래였다.

그러나 덤불 속에 숨은 세 사람은 아무 감동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일어섰다. 이들은 노래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밀랍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시몬이 인어를 향해 올가미를 재빨리 던졌다. 그러자 인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올가미에 걸렸다. 시몬은 줄을 잡아당겨 인어를 풀밭 위로 끌어내었다. 그제야 인어의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났는데, 허리 위는 어여쁜 처녀였고 허리 아래는 은빛 비늘이 눈부신 물고기였다. 인어는 눈물을 흘리며 사람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발 저를 풀어 주세요, 네? 그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인어가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다. 세 사람은 귀를 밀랍으로 틀어막아 듣지 못했다.

바르나바는 인어를 사로잡으면 목동 일을 하는 청년 스타쉑에게 일단 맡기기로 했다. 스타쉑이 헛간에서 지내기 때문에 그 속에 인어를 가뒀다가 날이 밝으면 수레에 실어 왕자가 있는 체르스크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폴란드의 비스와 강 시레나 다리 근처에 세워진 인어상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폴란드의 비스와 강 시레나 다리 근처에 세워진 인어상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세 사람은 인어를 꽁꽁 묶어 스타쉑의 헛간으로 갔다. 밤이 깊었기 때문에 스타쉑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스타쉑, 문 열어! 빨리!”

세 사람은 귀를 틀어막은 밀랍을 빼고 헛간 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한참 뒤에야 스타쉑은 잠이 깨어 침대에서 일어났다.

“누구세요?”

“스타쉑, 나야, 마테우쉬…. 시몬과 바르나바 사제님을 모시고 왔어.”

“한밤중에 웬일이세요?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요?”

스타쉑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헛간 문으로 다가갔다. 헛간 밖에서 마테우쉬가 또 소리쳤다.

“잔말 말고 빨리 문 열어! 내가 낮에 부탁한 일을 벌써 잊은 거야? 인어를 붙잡으면 자네가 아침까지 맡아 주기로 했잖아.”

“아니, 그럼 인어를 사로잡았나요?”

스타쉑은 깜짝 놀라며 헛간 문을 얼른 열었다.

“와아, 인어가 틀림없네.”

스타쉑은 세 사람이 붙잡아온 인어를 보고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오, 이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처녀의 얼굴이 있을까? 천사도 이보다는 덜 예쁠걸.’

스타쉑은 인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처녀를 본 적이 없었다. 시몬이 스타쉑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정신 차려, 이 사람아.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나?”

“인어는 역시 다르네요. 황홀하게 아름다운걸요.”

“아름다운 건 사실이지. 하지만 인어는 마녀란 말이야. 사람을 유혹하려고 미녀의 탈을 쓰고 있는 거지.”

바르나바가 스타쉑에게 부탁했다.

“여보게, 수고 좀 해 주게. 내일 아침 일찍 수레에 실어 체르스크로 떠날 거니까, 새벽까지만 맡아 주게. 묶인 줄을 절대로 풀어 주면 안 되네. 인어가 도망칠 수도 있거든. 인어에게서 눈을 떼지 말고 철저히 감시해야 하네. 졸아서도 안 돼.”

“잘 알겠습니다. 그럼 아침에 다시 뵙겠습니다.”

세 사람은 스타쉑에게 인어를 맡기고 돌아갔다. 이리하여 스타쉑은 헛간에서 인어와 단둘이 밤을 보내게 되었다.

스타쉑은 인어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인어는 스타쉑과 눈이 마주치자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조차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인어는 새벽녘쯤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가사도 없는 그 노래는 어찌나 듣기 좋은지 헛간에 있는 소들도 여물을 먹다 말고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스타쉑은 인어의 노래에 완전히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서 인어가 스타쉑을 바라보며 “제발 저를 풀어 주세요, 네? 그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하고 말하자 망설이지 않고 주머니칼을 꺼내 인어를 묶은 줄을 잘랐다. 인어는 크게 기뻐하며 스타쉑의 목을 끌어안은 채 이렇게 속삭였다.

“헛간 문을 열어 주세요. 우리 같이 가요.”

스타쉑은 무엇에 홀린 듯 벌떡 일어나 헛간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인어는 몸을 일으켜 꼬리로 콩콩 뛰며 헛간에서 뛰쳐나갔다. 스타쉑은 말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인어는 비스와 강을 향해 가며 노래를 불렀다. 스타쉑은 노래에 취한 듯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그 뒤를 따라갔다. 인어의 노래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둘 깨웠다. 사람들은 집에서 나와 놀란 눈으로 인어가 노래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인어는 비스와 강가에 다다르자 마을 쪽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비스와 강을 사랑했네.

착하고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사랑했네.

나는 당신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고

당신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 넣었네.

그런데 당신들은 어째서 나를 헛간에 가두었는가?

나를 꽁꽁 묶어 왕궁으로 데려가

왕자 앞에서만 노래 부르기를 원하였는가?

이제 나는 비스와 강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네.

당신들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지려네.

앞으로는 비스와 강의 목소리만이 당신들에게 말을 걸리라.

먼 훗날, 당신들한테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찾아오리라.

그때는 당신들도, 당신들의 아들들도, 당신들의 손자들도

더 이상 아무런 꿈도 꾸지 못하게 되리라.

그 고난과 역경의 시절에 비스와 강은 당신들의 후손들에게

희망과 승리를 북돋우는 노래를 불러 주리라.

인어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였다. 마을 쪽에서 강가를 향해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르나바 사제와 시몬, 마테우쉬였지. 이들은 인어의 노래를 듣고 뒤늦게 깨어나 인어를 잡으러 온 것이다.

“잡아라! 놓치면 안 돼!”

인어는 사람들을 보더니 강물 속으로 얼른 뛰어들었다. 스타쉑은 바르나바와 시몬, 마테우쉬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그대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하고 소리치고는 인어를 따라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뒤 수백 년이 흘러 마을이 있던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시가 생겨났다. 이 도시는 점점 커져 폴란드의 수도가 되었는데 여기가 바로 ‘바르샤바’다.

바르샤바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인어에 얽힌 신화를 떠올리며 인어를 바르샤바의 상징물로 정했다. 그래서 오늘날 바르샤바에서는 비스와 강가는 물론 구시가지 광장 등에서 인어 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신화 이야기 해설>

바르샤바는 동유럽에 속한 나라인 폴란드의 수도다. 쇼팽·코페르니쿠스·퀴리부인·교황 바오로 2세의 고향으로도 유명하고, 인어를 상징물로 삼아 인어 상을 세워 놓은 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바르샤바에는 현재 바르샤바를 대표하는 두 개의 인어 상이 있다. 비스와 강가에 있는 은빛 인어 상과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시레나 인어 상이 그것이다. 바르샤바에서는 그 밖에도 옛 건물이나 버스, 전차 등에서 인어 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3세기에 바르샤바가 도시로 건설되고 14세기부터 여러 제후령의 중심 도시가 되면서 이곳에 인어 상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1596년 크루쿠프의 큰 화재로 인해 폴란드의 수도가 바르샤바로 바뀌면서는 더 많은 인어 상이 만들어졌다.

바르샤바에 이처럼 인어 상이 많은 것은 인어가 바르샤바의 상징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어는 바르샤바의 유래와 관련된 신화에 빠짐없이 나온다.

그 신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오늘 읽은 신화로, 바르나바 사제와 두 어부가 인어를 사로잡은 이야기다. 이 신화에서 헛간에 갇힌 인어는 목동 스타쉑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뒤 비스와 강물 속으로 뛰어들기 전에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예언한다. “먼 훗날, 당신들한테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찾아오리라. (생략) 그 고난과 역경의 시절에 비스와 강은 당신들의 후손들에게 희망과 승리를 북돋우는 노래를 불러 주리라.”

이 예언대로 수백 년 뒤 그 마을에 큰 도시(바르샤바)가 생긴 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찾아왔다. 1795년에는 폴란드가 프로이센에게 넘어가 1918년 공화국으로 독립할 때까지 유럽 지도에서 사라지는가 하면 1939년 독일군의 포위를 받아 시가지가 파괴되기 시작하여 1944년 시내 건물의 80퍼센트 이상이 파괴되는 참변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고난과 역경의 시절에도 바르샤바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1945년부터 도시 재건을 시작하여 1988년 마침내 폐허가 되기 전의 모습으로 바르샤바를 복원시켰으니까.

인어에 얽힌 두 번째 신화는 비스와 강에서 어부 노릇을 하는 바르와 샤바 부부 이야기다. 어느 날, 바르는 강에서 고기를 잡다가 샤바라는 인어를 낚는다. 샤바의 아름다움에 반한 바르는 샤바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다. 하지만 고향을 잊지 못한 샤바는 결국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강물 속으로 떠나 버린다. 이렇게 해서 두 부부가 살던 마을은 남편과 아내의 이름을 따서 ‘바르샤바’로 부르게 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인어가 실제로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인어에 관한 신화와 전설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죽이는 인어 세이렌이 나오는가 하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로 수컷 인어인 트리톤이 등장한다. 또한 중국 신화에는 사람 얼굴에 물고기 몸을 지닌 능어, 교인 등의 인어가 나온다. 능어는 여자 무당이 타고 다녔는데, 몸집이 커서 배 한 척을 삼킬 수가 있었다. 그리고 교인은 바다 속에 살면서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짰으며, 울기만 하면 그 눈물이 진주로 변했다고 한다.

인어가 상상 속의 동물이긴 하지만 옛날에 인어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로마 함대 사령관 플리니우스는 <박물지>란 책에서 수컷 인어를 여러 번 보았다고 했다. 1403년 네덜란드에서는 인어가 붙잡혀 15년 동안 갇혀 살았는데 양털을 잣거나 무릎 꿇고 기도도 했다.

인어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포유동물인 듀공이나 매너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바다소의 일종인 이들은 머리가 사람처럼 생기고 새끼를 안고 젖을 먹여 인어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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