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冬至)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짓(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시평]

옛시조에는 본래 제목이 없다. 그래서 첫 행을 그 제목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 되었다. 황진이의 이 시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길고 긴 겨울, 동지(冬至) 밤을 이야기하면, 어찌 황진이의 이 시조를 거론하지 않으리오. 길고 긴 겨울밤을 연연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견디며, 그 사랑과 그리움을 의연하면서도 또 절절하게 노래한 절창 중의 절창의 시조이다.

황진이는 그 뛰어난 상상력과 함께 과감한 비유를 사용한 시인이다. 동짓달의 기나긴 밤이라는, 시간적 흐름을 문득 ‘한 허리를 버혀냄’으로 해서,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시각적 이미지로 바꾸어 제시하는 탁월한 시재(詩才)를 지닌 시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황진이는 이 시조에서 다만 시각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마치 길 떠난 사람을 위해 아랫목에 이불에 싸서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묻어두는, 그런 마음과도 같은 따뜻한 사랑을 시에 담았다. 기다림의 길고 긴 밤을 한 허리 잘라내서, 그 기다림의 시간도 마음에 차분히 접어두고, 또 이불 아래 묻어둠으로 해서, 그리움을 고이고이 간직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시이다.

‘어룬님’은 중의법이다. 추위에 꽁꽁 언 님이며, 동시에 혹여나 사랑이 식어버린, 그래서 꽁꽁 언 듯한 님이 그것이다. 그래서 ‘어룬님’ 님이 돌아오면 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어 둔, 따듯해진 길고 긴 그리움의 동지 밤을, 아니 그리움의 그 마음을 굽이굽이 펴서, 사랑하는 님에게 덮어주겠다는 사랑의 마음이 그득 담긴 시조이다.

길고 긴 동짓날 밤을 홀로 지내야 했던, 서러움에 겨운 그 그리움, 고적한 연연함, 사랑하는 님과 함께 굽이굽이 펴며 온밤을 보내기를 고대(苦待)하는, 그 사랑의 기다림이 절절히 담긴 절창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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