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소장했던 미공개 유묵
경매서 19억 5천만원에 낙찰
안 의사 유묵 중 최고가 경신

(출처: 서울옥션)
(출처: 서울옥션)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형세를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의 모습에 비하겠는가.”

이는 1910년 3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 직전 쓴 묵서(먹으로 쓴 글씨) ‘용호지웅세 기작인묘지태(龍虎之雄勢 豈作蚓猫之態)’이다. 사형을 앞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그의 필치가 당당하고 용맹스럽다. ‘경술년 삼월 뤼순 감옥에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이 쓰다’라는 글과 함께 안 의사의 상징인 왼쪽 약지 한마디가 없는 손바닥 도장이 선명히 남아있어 독립투사의 강인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치열한 경합 끝에 낙찰   

20일 서울옥션에 따르면, 전날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제176회 미술품 경매에서 안중근 의사의 묵서가 19억 5000만원에 낙찰됐다.

묵서는 4억원에서 경매가 시작돼 추정가인 5~10억원을 훌쩍 넘어 안 의사의 유묵 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전 최고가는 2018년 7억 5000만원으로 낙찰된 유묵 ‘승피백운지우제향의(乘彼白雲至于帝鄕矣)’이다. “저 흰구름 타고 하늘나라에 이르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묵서는 그동안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었으며, 이번 경매를 앞두고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이날 경매는 5000만원씩 높여가며 응찰이 이뤄졌고, 2명의 전화 응찰자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고, 국내 개인 소장가가 낙찰받았다. 이번 낙찰로 인해 일본에 있던 안 의사의 묵서가 110여년 만에 국내로 돌아오게 됐다.

안 의사는 1909년 동지들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고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했다. 1910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한반도 식민지화를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혐의로 체포됐고, 이듬해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으로 31세 나이에 순국했다.

◆역사·상징성 담긴 유묵은 보물 지정

안 의사는 투옥 전에 쓴 서예 작품은 거의 없고, 사형 선고 후 40일 동안 많은 글씨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상징성이 담긴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꾸준히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2016년에는 미술품 경매에 ‘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不如一敎子)’ 유묵이 등장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7억 3천만원에 구매했다.

2017년에는 ‘세심대(洗心臺)’ 글씨가 경합 끝에 4억원에 판매됐다. ‘마음을 씻는 곳’ 이라는 의미의 ‘세심대’는 안중근 의사의 옥중(獄中) 유묵(遺墨)으로 일본의 개인 수장가가 보관하고 있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경매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이처럼 안중근 유묵은 속속 공개되고 있으며, 국내에 들어온 유묵은 보물로 지정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문화재청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인 3월 뤼순감옥에서 쓴 유묵 5점을 보물로 지정했다. 이들 유묵 왼쪽 아래에는 ‘경술삼월 여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는 문구와 안 의사의 손도장이 있다. 이는 일본인에게 주기 위해 제작됐다.

이 가운데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라고 쓴 유묵은 대련세관(大連稅關)에서 근무하던 카미무라 쥬덴이라는 일본인에게 쓴 것으로 ‘사람이 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라는 의미다. 논어의 위령공(衛靈公)편에 ‘사람이 깊은 사려가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생긴다(人無遠慮, 必有近憂)’에서 유래한 문구이다.

이보다 앞선 1993년 보물로 지정된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 유묵은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는 뜻으로 안중근 의사의 국가 안위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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